깊은 밤, 도윤의 시선이 한동안 한곳에 머물렀다. 현운재의 수많은 건물 중 여전히 불이 켜진 한곳의 불빛이 자석처럼 그를 끌었다. 자신도 모르게 이곳으로 오고 말았다. 정원 마당에 서서 그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으며 숨죽인 가느다란 흐느낌을 천둥처럼 듣고 있었다.
유진이 머문 이 층 건물은 매영당(梅影堂)으로 불린다. 밝은 달빛 아래 분분히 흩날리는 것은 꽃비와 녹음 머금은 물기. 우수수 날린 하얀 꽃잎이 하늘을 덮었고, 천지를 둘러봐도 사기는 어느 곳에도 일지 않았다. 깊은 한 점까지 정화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날 그는 혼란스럽다.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마음은 그를 혼란케 했다.
너는 나를 두렵게 한다. 하늘 아래 누구도 두려워하지도, 할 수도 없는 나를 이렇게…….
성인식까지는 일주일. 잘못되면 어떻게 될지에 대해 그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그 일보다 가슴 한쪽이 신경 쓰였다.
영원히 너를 잊게 된다면…….
아련한 시선을 접고 도윤은 몸을 돌렸다. 더 이상 생각하는 것 자체가 위험했다. 이제부터 그는 정결의 의식으로 들어가야 할 터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문득 울음소리가 멈췄다. 드드득, 미닫이 소리가 나더니 불 켜진 방에서 노대(露臺, 발코니)로 향한 문까지 열렸다. 맨발로 달려 나오는 소리가 누구의 것임을 알면서도 도윤은 움직일 수 없었다. 난간 끝 그곳에 하얀 물체가 모습을 보일 그동안, 충분히 자리를 피할 수 있었음에도 도윤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시선을 올린 끝, 혼란으로 떨고 있는 유진의 시선과 얽혔다.
“오빠……, 도윤 오빠!”
미세하게 들썩이는 입술 끝 이름을 읽었다. 감추려 해도 투둑 떨어진 눈물이 그의 마음을 적셨다. 눈물조차 멈춰 버린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끝없이 떨고 있는 작은 그림자를 결국 외면하지 못했다.
“왜 이제 왔어요? 왜 이제…….”
치열한 내면의 싸움을 이기고 새어 나온 신음소리도 도윤은 읽었다. 밀어내지도 끌어안지도 못하는 그를 보고 떨리는 눈동자를 외면하지 못하는 순간, 울먹이던 유진이 까치발을 하고 난간 위로 몸을 솟구쳤다. 그대로 고꾸라질 듯 그를 향해 팔을 뻗었다.
순간이었다. 그의 검푸른 눈빛이 순식간에 흐려졌다. 어떤 그리움이 그의 가슴을 강타했다. 그의 품에서나 겨우 잠이 들던 유진의 두려움이 노도처럼 밀려들었다.
혼자서 울고 있었다고, 충분한 공포 속에서 떨고 있었노라고, 작게 속삭이는 흐느낌을 도윤은 모두 들었다. 미워하지만, 결코 밀어낼 수 없었노라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의 시선 끝에 새처럼 날아오른 작은 몸. 그것은 밤하늘을 가르는 유성. 아니, 그것도 아니었다. 그저 작은 아이. 온 힘을 다해 그를 부르는 아이를 향해 도윤은 팔을 뻗었다. 그 전에 땅을 찬 발이 먼저 허공을 짚었다.
“진!”

이서윤

iseoyun@daum.net
착실한 직장인에서 일탈을 꿈꾸고파 글을 시작한 소심쟁이.
꿈은 이뤄진다(夢想成眞)라는 믿음을 가진 낭만주의자.
해피엔딩이 좋아 로맨스를 쓰는 해피엔딩 마니아.
작가연합 ‘깨으른 여자들’에서 활동.

<출간작>
안개 속에 숨다, 왈가닥 결혼하다, 프레지던트, 매화우, 비연, 독감, 해후, 효월, 매혹의 포획자, 비애, 소유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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