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어느 날 정처 없이 걷던 재경은,
도로 위에 졸음운전을 하던 남자의 차와 맞닥뜨린다.
남자는 그녀를 살리기 위해 제 목숨을 희생하고,
남자의 동생인 민혁은 재경을 처절하게 원망한다.
“죽으려면 내 손에 죽어!”
“…….”
“너 뭐야 도대체.”
삶의 의지를 잃어버리고 자살을 결심한 재경을 발견한 민혁은,
제 손으로 대신 재경의 목을 조르지만 죽이지 못한다.

그렇게 안타까운 과거를 공유하게 된 두 사람은 10년 후 재회하는데.
여전히 비오는 날을 두려워하는 재경을 민혁은 변화시키고 싶어한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피하지 마. 평생 비가 올 때마다 괴로워하고 바다 구경 한 번 한 갈 생각이야? 십년이면 이제 고쳐야 할 때도 됐어. 그러지 말고 좀 더 노력해 봐.”
수영장에 데려가 물에 대한 공포심을 없애주려 했지만,
어지러움을 느낀 재경은 도리어 물속에 빠지고.
“몇 번이고 다시 말해줄까? 좋아해. 나 김민혁이 서재경 너를 좋아해. 아직 네 감정은 모르지만, 나를 좋아하게 될 때까지 난 포기 안 해. 이기적이어도 좋아. 네가 놀라든 불편해하든 상관 없어. 너 정말 안 되겠어. 난 그냥 내 마음대로 할 거야.”
그간 그녀를 볼 때마다 억누르던 사랑의 감정을 드러내는 민혁.
“그러니까 너도 극복해.”

10년이나 두 사람을 괴롭혀온 과거의 기억. 가족들의 반대. 그리고 재경을 질투하는 가령이 만들어 놓은 함정 속에서 그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
“누가 그러더라구요. 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그 사람을 만났을 때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마음을 표현하는 순간이라고. 나 눈 딱 감고 한 번 미친 짓 해볼래요. 까짓거 어떻게 되겠어요? 선배랑 헤어지고 그 오랜 순간을 아파했는데, 위기도 양심이 있다면 알아서 비켜가야지.”
“사랑해. 이제 어디 가지 마……. 가라고도 하지 마. 나 너 꼭 붙들어 놓고 안 놓는다.”
우리가 재회하는 행운은 한 번이면 충분했다는 걸.


-본문 중에서-

“뭐하는 거예요, 지금?”
“서재경 씨. 지금 나 업무 중인 거 안 보여? 근무 시간에 함부로 이동하는 것은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회사 기강이 많이 해이해졌군.”
겨우 화를 억누른 재경의 물음에 민혁이 담담하게 대꾸했다. 오히려 이제야 나타난 그녀에게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밀어낼 땐 언제고 떠나 주겠다니까 도리어 자신을 탓하다니. 도대체 재경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또 도망가는 거예요?”
“뭐?”
“내가 묻잖아요. 십 년 전 그때처럼. 이번에도 또 미국으로 도망가 버리는 거냐구요!”
재경이 언성을 높인다. 민혁은 일단 소란을 피하기 위해 그의 개인 사무실 문을 닫았다. 재경은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그를 응시한 채로 씩씩대고 있었다. 민혁은 그런 그녀를 무시하고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와 앉으려다가, 그녀가 다시금 묻는 소리에 신경을 거슬려 재경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럼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그렇다. 자신은 비겁하고 나약한 인간이다. 하지만 지금껏 자신이 수없이 밀어붙였음에도 꼼짝도 않는 재경은 또 어떤가. 자신의 마음을 받아 주기는커녕 오히려 보란 듯이 제 눈앞에 서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던 재경이 미워서, 민혁은 신경질적으로 들고 있던 파일을 내던졌다.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 네가 그 자식하고 희희낙락하며 행복해 하는 꼴을 축하해 주기라도 하란 말이야?”
단 한번만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줬더라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사랑까지는 아니어도 노력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재경은 매번 민혁의 마음을 짓뭉갰다. 자신을 돌아봐 주는 시늉도 안 했다. 그것도 모자라 다른 남자까지 만나는 주제에 자신은 그대로 있기를 바라는 아이러니가 우스워서, 아니 약이 올라서 민혁은 재경을 향해 원망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내가 좋아하는 건 그 애가 아니야!”
재경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늘 참고 양보하던 그녀가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은 의외였다. 민혁은 드디어 재경에게서 어떤 틀이 깨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것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는 알 수가 없어, 그저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십 년 동안 사랑해온 건……. 바로 당신이야.”
그러나 이어지는 재경의 말에 민혁은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제 귀가 이상한 걸까. 글자와 의식이 따로 노는 듯 그녀가 하는 말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멍청하게 재경의 말을 되묻는 것뿐이었다.
“뭐?”
“몇 번이고 말해 줄까요? 나 선배 좋아해요.”
결국 고백해 버렸다. 십 년이란 세월 동안 혀끝에서만 맴돌던 말을, 재경은 이제 드디어 민혁의 눈앞에 토해냈다. 애초에 그녀 자신만 생각하면 되는 것이었다. 언제든 자신이 편할 때면 훌쩍 떠나 버리는 민혁처럼, 재경도 막상 조금만 이기적으로 생각한다면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 일이 어렵지 않은 일이었을 거라 생각했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열망으로 끄적이고 있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글쓰기 초보.
무미건조한 일상에 턴포인트가 되어줄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미디어 리뷰가 없습니다.

별점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