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피……. 으앙!”

“코피는 너만 났냐? 나도 났어, 코피.”

“나는 마이 아프단 말이라니.”

“나도 아파.”

직업군인인 아버지로 인해 이사가 생활화되어 있었던 승주네

강원도 오지 산골 고성 마을에서의 대단한 신고식은

4총사라는 단짝 친구를 선물해 주지만 빠른 헤어짐을 맞이하게 되고,

“안녕, 잘 있어. 흑! 우리…… 꼭 다시 만나자. 훌쩍!”

“니 나를 잊으면 아이 되드래.”

“응. 안 잊을게.”

결코 잊지 않았던 친구들이지만 빛바래질 추억이 두려워 찾지 못한 그곳에

6개월 파견근무를 나오게 된 승주는 시내 식당에서 예상치 못한 사람을 만나는데,

“두 사람 고성에 살던 박천성, 김정분 아니야?”

“스응주?”

한국이 좁다 좁다 하지만 이렇게도 만나지다니.

새침한 천생 공주 진경이, 재야의 소리 없는 강자 정분이,

모든 놀이를 섭렵한 황제 천성이, 소리만 요란한 놀이 젬병이지만 악바리 승주

다시 만난 4총사는 추억에 젖어드는데…….

오랜 추억을 다시 만난 설렘일까?

정분을 향한 묘한 두근거림은 승주를 들뜨게 한다.

친구에서 남자와 여자로 다가가는 그들의 설렘 가득한 이야기.

[본문 내용 중에서]

“승주야.”

“어.”

“몇 번 뽑았드래?”

“너는?”

“나는 17번.”

제 손에 든 번호를 자랑스레 보여 주는 천성을 보며 승주는 자연스레 진경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아직 가방을 다 챙기지 못했는지 분주하게 움직이는 진경을 보며 승주는 제 손 안에 든 번호를 꽉 움켜쥐었다.

승주가 대답을 하지 않자 천성이 채근했다.

“왜서 대답을 아이 하니? 니 몇 번 뽑았드래?”

“15번.”

“15번? 그믄 지금보다는 한참은 자리가 가찹겠다니.”

“어.”

승주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어서 자리에 앉길 바라는 마음에 초조하게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웅성거리는 아이들의 소음 사이로 기다리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학생들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고, 여학생들부터 번호대로 앉아요. 1번이 여기 1분단 앞자리, 2번부터 그 뒤로 순서대로 앉으면 돼요.”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여학생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승주는 얼른 순서를 세어 제자리를 확인했다. 각 분단이 여섯째 줄까지 있으니까 저는 3분단 3째 줄이었다. 확인을 마치고 두근두근 그 자리만 바라보고 있는데 진경이 바로 그 앞으로 와 서는 것이 보였다. 아자, 소리 치고 싶은 것을 참으며 주먹을 불끈 움켜쥐는데 진경이 1분단에서부터 다시 순서를 세어 보더니 그 뒷자리에 가서 앉았다.

어쩔 수 없는 실망에 승주의 어깨가 처졌다. 그래도 누가 눈치챌까 표를 낼 수는 없어 처진 어깨를 다시 추스르는데, 곁에 섰던 천성이 뚱한 목소리를 내었다.

“에이, 망했드래!”

“왜?”

“진경이 쟈하고 짝꿍하고 싶어서 그런다니.”

“너 진경이 좋아해?”

“어! 진경이 쟈가 우리 반에서 제일 이쁘자네. 니도 글지?”

“글쎄.”

제 마음도 천성과 꼭 같으면서 승주는 짐짓 아닌 척 굴었다. 그때 선생님께서 남학생들에게 제자리를 찾아가라 말씀하셨고, 승주는 진경을 쳐다보지 않으려 애쓰며 걸음을 옮겼다. 진경만 신경 쓰느라 정작 짝이 된 아이를 살필 겨를이 없었던 승주는 얼핏 제자리를 보았다가 인상을 확 찌푸렸다.

하필이면 반에서 제일 작고 못생긴 정분이가 제 짝이 되다니 이보다 더 운이 나쁠 수는 없었다. 정분이와 짝이 되느니 차라리 남자와 짝을 하는 편이 낫겠다 싶은 생각에 승주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그러나 정분은 승주와 짝이 된 것이 꽤 마음에 드는 듯 비실비실 웃으며 자리를 정리하며 말을 걸어왔다.

“잘 지내보자이. 내 이름은 김정분이드래.”

“어. 난 문승주야.”

“이야! 니 참말로 강아지처럼 이쁘게 생겼드래.”

“뭐?”

“내 한 번만 만져보면 아이 되나? 똑 찹쌀떡 같드래.”

“싫어! 만지지 마!”

승주의 앙칼진 대답에도 아랑곳 않는 정분은 자꾸만 얼굴을 만져 보겠다고 달려들었다. 질색을 한 승주가 도끼눈을 뜨고 씩씩거리는 것을 보고 나서야 정분은 풀썩 자리에 앉아 시무룩해졌다.

“나가 만진다고 뭐 닳는다니? 한 번만 만져 보자는데 뭐이 그리 비싸게 굴고 그런다니.”

“내가 동네 바둑이냐? 그렇게 막 만져 대게?”

“야야, 나도 드러워서 아이 만진다니. 흥!”

[프로필]

이희정

8월 23일생.

감정기복이 심한 전형적인 B형.

가슴이 따뜻해지는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은 사람.

출간작

[모전여전] [복남이 이야기] [녹우綠雨] [쎄시봉!] [사랑 뒤의 사랑] [극기에 대한 맹세]

[Till Love] [춘화연애담] [라디오 스캔들] [사돈 對 사돈] [비애妃愛] [교동연가]

[The Moment]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 [애루화] [선남, 선녀] [수작] [햇빛우물]

[아삼삼한 연애] [DITTO 동감] [님아恁我] [사랑한다는 말] [그 사람]

[목차]

01 ~ 11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