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물과 사람의 마음을 읽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레스토랑 <카페마녀>의 사장 지유. 자신의 능력 때문에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는 지유는 사람들과의 깊은 관계를 피하게 되지만, 결국 상처받은 사람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음식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 준다. 그러나 정작 지유 자신은 제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기댈 곳이 없다.
길고양이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먹이를 주어 고양이를 끌어들이게 된 사건으로 번번이 계약한 건물에서 쫓겨나게 된 지유는 2층에 소아과가 있는 새로운 건물로 카페를 이전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소아과 의사인 인우를 만난다.
오래전 가족에게 생긴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인우. 그런 그의 인생에 지유라는 여자가 조용히 파문을 일으키며 들어가게 된다.

-본문 중에서-

작게 야옹 하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좋아 친구. 계약 성립. 잘 가.”
여자의 말에 고양이가 몸을 돌려 휙 하고 사라졌다. 느릿하게 일어나 몸을 돌리던 여자가 인우를 보더니 흠칫하고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나 금세 놀란 표정을 갈무리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를 지나쳐 카페 입구로 향했다.
“고양이하고 대화도 하나?”
무뚝뚝하게 툭 던지는 인우의 말에 그를 지나쳐 카페 안으로 들어가려던 지유가 발걸음을 멈췄다.
“뭐라고요?”
“어쨌거나 고양이는 안 돼.”
“대체 무슨 소리에요?”
“위층이 병원인 거 모르나? 여기에 길고양이를 끌어들이는 건 안 돼.”
지유는 자신의 말을 끊고 들어오는 인우에게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그게 댁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허스키한 목소리에 인우는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이 묘한 조합의 여자를 바라봤다. 대충 틀어 올린 머리카락에 긴 나무젓가락을 꽂고 있는 여자의 딱 달라붙은 티셔츠가 육감적인 몸매를 드러내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몸매와 헤어스타일의 관능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동그란 이마와 커다란 눈동자의 얼굴은 나이를 종잡을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느끼는 거지만 여자의 얼굴은 뭔가 이질적인 기분을 느끼게 했다. 꼭 정교한 도자기 인형 같은 하얀 얼굴. 그러나 완벽한 이목구비 때문에 오히려 어딘지 모르게 자연스럽지 못하게 비틀린 느낌이었다. 모든 빛을 반사해내는 듯한 무기질의 까만 유리알 같은 눈동자. 마치 살아 있지 않은 존재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처럼 아무 감정도 실리지 않은 채 절 바라보고 있는 눈동자가 그에게 묘한 거부감을 일으켰다. 거기에 역시나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귀를 울리는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
그 목소리가 왠지 자극적이라 인우는 저도 모르게 턱에 힘이 들어갔다. 여자의 목소리가 꾹꾹 눌러 놓은 인우의 마음속 어딘가를 ‘툭’ 하고 건드리는 느낌이 들었다. 거슬렸다. 자신을 바라보는 저 까만 눈동자도 낮게 울리는 목소리도 자꾸만 답지 않게 심술이 나려고 했다.

-미리보기-

웃음기 어린 지유의 말에 인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즐겁다는 듯 자주 웃었고 인우는 그것이 좋았다. 여자의 웃음소리에 가슴이 자꾸만 간질거렸다. 가슴 밑바닥에서 즐거움이 몽글몽글 거품처럼 부풀었다.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신 지유가 가만히 잔을 바라보며 인우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인우가 눈썹을 들어 올리며 지유를 바라봤다.
“뭐가?”
“김인우 씨답지 않아서요. 무슨 일 있어요?”
밤은 묘한 마법을 부리기도 한다. 평소의 지유라면 묻지 않을 질문이었다. 그러나 몇 잔의 알코올과 밤에 취한 지유는 자신이 세운 벽을 넘어 버렸다. 핑계가 없지는 않았다. 남자는 평소와 달랐고 또 그것이 걱정이 되었으니까.
지유의 질문에 인우가 고개를 기울이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 마음을 그대로 담은 직구를 날릴 생각은 아니었다. 그러나 밤은 인우에게도 마법을 부렸다. 생전 처음으로 인우는 제 심장 깊은 곳에서 답을 끄집어냈다. 잔을 들고 있던 손이 다시 간질거렸다. 인우는 천천히 그녀의 발그레한 뺨을 향해 손을 뻗었다.
지유는 천천히 다가오는 인우의 손을 바라보며 숨을 들이켰다. 곧 그의 머릿속 속속들이 들어찬 감정들이, 생각들이 자신에게 몰려들 것이었다. 그녀는 피하지 못하고 그저 눈을 질끈 감았다. 또다시 어찌할 수 없는 제 처지를 절감해야 하는 순간이 두려워 그녀는 감은 눈을 뜨지 못했다.
그리고 인우의 손이 지유의 뺨에 닿았다. 매끈한 그녀의 뺨에 살짝 말아 쥔 손을 대고 인우는 엄지손가락으로 뺨에 물든 붉은 색을 문질러 보았다. 여자의 뺨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마음이 녹아내릴 듯한 그 달콤함에 인우는 입가에 삐뚜름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인정하고 말았다.
아아, 이제는 정말 어쩔 수 없었다.
제가 가진 죄책감도 미안함도 이 여자를 향한 감정을 막아내지 못했다. 눈을 감은 여자의 촘촘한 속눈썹이 파르르하니 떨고 있었다.
“글쎄, 나도 모르겠어. 그냥 그쪽이 보고 싶어졌어.”

취미가 너무 많아 즐겁고도 괴로운 여자.
그래도 평생 글을 쓰고 싶은 여자.

오늘도 빵을 굽고 재봉틀을 돌리며 글을 쓰는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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