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관의 마음 [무료] - 로맨스 소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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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기능	: TTS 제공
ISBN	: 979-11-295-0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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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 소개

나의 열병 같은 그대여.

그대는 그것을 알고 계시오?

열병은 사람의 목숨을 앗을 만큼 지독하다는 것을.

그대, 나의 지독한 열병 같은 사람아.

역모에 휘말려 고초를 겪은 부모를 위해 남장을 한 채 춘화(春畵)를 그리던 윤영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시작한 ‘그 일’은 그녀를 녹월국 정통 후계자인 혜에게 인도하고,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녀는 결국 혜에게 자신의 정체를 발각당하는데!

‘녹월춘화야담’의 숨은 이야기 ‘약관의 마음’!

2. 작가 소개

김한나(석류알갱)

작가공동블로그 Noble RED(http://redteapomegranate.tistory.com)

▣ 출간작

해토머리

약손

녹월춘화야담 1,2권

마귀-죄의 꽃

환향

밤에 피는 꽃

트랭퀼라이저

륜의 반려

뫼비우스

3. 차례

#약관(弱冠)의 마음

4. 미리 보기

낮의 해가 밤의 달을 보기 원하듯. 밤의 달이 낮의 해와 같은 순간을 보내기 원하듯. 두 사람의 날들은 안타까운 미소와 애틋한 숨결만이 가득한 나날들이었으리라.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사라락 불어오는 바람결 사이사이로 초록빛을 머금은 붉은 단풍잎들이 나부끼며 바다 빛의 하늘 비단을 고운 색감으로 수놓았다. 떨리는 눈망울을 들어 그 소박한 풍경을 바라보던 소향의 귓가에는 멀리서 들려오는 풍경 소리가 파도의 출렁임처럼 아득하게 전해져 왔다.

아득한 풍경 소리 사이로 어느 샌가 그분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가 가까이 들릴수록 풍경이 어우러지는 소리는 점점 사라져갔다. 그리고 남은 것은 온전히 그 사람의 소리. 그 사람의 숨결. 그 사람의 음성.

그리고 주름이 진 입가에 맺힌 그 사람의 풋내 나는 미소.

‘어찌하여 오늘은 저분께서 내게 저런 약관(弱冠)의 미소를 던져주시는가.’

그 놀라운 물음의 언저리에 괜스레 마음 떨려 와 소향은 다 늙어서 주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콧잔등을 찡그렸다. 저 풋내 나는 미소를 보고 있자니 불혹이 다 된 자신 또한 이팔청춘의 꽃띠로 되돌아가버린 것 같아서 이 망측한 감정을 들킬까 지레 염려까지 하였다.

“일밖에 모르는 일벌레 나리께서 어찌하여 오늘은 등청을 아니하셨습니까?”

말끝에 고인 미묘한 여운 속에는 비틀림,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말로 꺼내지 못할 서운함이 담겨 있었다. 알고 있다. 이깟 투정질 따위는 분에 차지도 않는 못난 짓거리이며 도승지 나리께서는 곧 죽어도 이 투정질을 받아들여줄 인사가 아니라는 것도.

이래 봤자 비참해지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도 소향은 잘 알고 있었다. 서운함을 가지고 말해보았자 여인이 가진 은애의 감정도 저이 앞에서는 좀보 같은 맘을 드러내 보이는 것 정도로밖에는 여겨지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내 이 불퉁스런 말투에도 저분께서는 어찌하여 자꾸만 빙긋이 웃기만 하시는가? 이 속마음 다 아는 것 같은 저 눈빛으로. 그동안 얼마나 서운하였냐고 묻는 것 같은 저 시선으로, 어찌하여 이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봐주시는 것이지?’

소향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봐주는 도승지의 낯선 행동에 가슴이 떨려 와 목이 갑갑하게 잠기는 기분이 들었다.

이상했다, 이 낯선 분위기는. 그 두 사람의 사이에선 한 번도 통한 적 없었던 기류였기에 자리에 선 여인의 눈동자가 점점 더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곧 여인의 발걸음은 천천히 뒤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 발짝, 두 발짝. 낯설고 오묘한 기분에 휩쓸리고 싶지 않아 이번에는 소향이 먼저 ‘도망치는 것’을 선택했다. 상처받는 것은 이제 멈추고 싶어서 늘 손을 내밀고 그 자리에서 기다리던 여인이 이제는 먼저 도망치려 하는 것이다.

이제는 이 덧없는 마음을 지워내어 버리려고.

이팔청춘의 풋풋한 연심 따위는 다 버려버리고, 불혹의 갇힌 마음을 지니고 살아간다면 기다림에 지친 상처는 더 이상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그만.”

흰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사내는 눈앞에서 뒷걸음질 치기 바쁜 여인을 향해 입술을 떼었다.

“멈춤. ……부디, 멈추어달라고. 그 발걸음.”

허참성은 눈앞의 여인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가까이하며 다가섰다. 생각해보니, 처음이었다. 이렇게 이 여인에게 자신이 먼저 다가가는 것은.

“……내, 내일모레 죽을 날이라도 받아두셨답니까? 어, 어찌하여 하지도 않으시던 행동을 하신답니까?”

당황스러움에 맘에도 없는 소리가 소향의 입술을 타고 불쑥 튀어나왔다. 그러자 그는 피식 헛웃음을 내며 대답했다.

“어차피 한 번 살다 가면 끝나버리는 세상. 나는 내 맘 가는 대로 살면 아니 된다는 법이라도 있던가?”

그의 기이한 대꾸에 소향은 발바닥에 아교가 지독히도 들러붙은 듯 그 자리에서 더 이상 도망칠 수가 없었다.

“차, 참말로 못 드실 것이라도 드신 모양이십니다?”

“…….”

소향에 음성에 허참성은 긴 숨을 내쉬더니 천천히 그녀의 손끝을 살짝 붙잡았다. 흰머리 한 올이 이마 자락을 타고 흘러내려와 그의 주름진 자리를 간질였다.

“두려웠네.”

도대체 이 사람 앞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서 솟은 것일까? 모시는 군주의 악착같은 사랑을 옆에서 보고 느꼈기에 가능한 것일까? 답을 알 수는 없지만 그는 눈앞의 여인에게 자신의 속내를 차분하게 끄집어냈다.

“평생을 청렴한 관리로 살고 싶었고 끝까지 인정받고 싶었네. 제 어미를 잃은 아이들에게도 가장 좋은 아비상을 보여주고 싶었어.”

“그런 말씀을 어찌하여……. 제가 정녕 나리의 맘을 몰랐겠습니까?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나리의 청렴함에 티끌을 묻히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스스로를 헐뜯는 그런 말은 멈추어주십시오. 만일 나리께서 저를 첩으로 삼는다 하셔도 제가 거절하였을 것입니다. 나리도 제 맘……, 모르시는 것이 아닐 텐데…….”

소향은 그의 손에 붙잡힌 손끝을 빼어내며 말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금 여인의 손을 꽉 붙잡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그대에게 이 말은 꼭 했어야만 했어. 아니,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아준 그대에게 나는 최소한 이 감정을 전했어야만 해. 백년천년 살다 가는 세상도 아닌 것을……. 한 번쯤은 이 마음, 올곧이 전하여도 되지 않았을까?”

불혹을 훨씬 넘긴 허참성의 눈동자에는 약관의 풋내 나는 진솔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육신은 늙고 어눌하였지만 마음만큼은 싱그러운 사내의 속정이 드디어 그 입술을 타고 흘러 진중하고 묵직한 감정의 색실들을 하늘 비단 위에 수놓기 시작했다.

“참말로 그대 말대로 내가 못 먹을 것을 품었나 보이.”

“…….”

“여전히 그 안타까운 것을 입술에 대어볼 수는 없으나, 이제 그것을 아끼고 귀애하며 그것의 향기라도 맡아보고 싶다네. 연 행수, 내 말이 어떤 말인지 아시겠는가?”

“나리…….”

소향은 그의 진중한 음성에 그만 눈을 꼭 감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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