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은 오직 너뿐이야.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심장 따위는 없어!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사촌이라는 사회적 장벽 속에서 남몰래 애틋하게 서로의 사랑을 키워야만 했던 연후와 미류. 그리고 그 사이에 뛰어든 한 남자, 정우.
그들이 3%의 사랑을 시작한다.
3%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면, 이제 그 행복을 찾고 싶다. 




[미리보기]

붉고 노란 석양이 머리카락을 물들인다. 책장에는 가지각색의 두꺼운 의학 서적이 빽빽이 꽂혀 있고 모니터가 놓인 책상에도 여러 권의 책이 쌓여 있다.
연후는 어린아이의 귀에 체온계를 넣고 기다렸다. 체온을 재고 목 안을 살피고 나서 차트를 작성했다. 속살을 파고 들어온 체온계가 무섭게 느껴졌는지 아이가 제 엄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칭얼댔다. 차트를 쓰던 연후가 아이를 달랬다.
“정말 착하다, 우리 도경이. 울지도 않고. 선생님이 딸기 맛하고 콜라 맛하고 넣어줘야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옆에 선 엄마에게 주의사항을 일러주었다.
“편도가 부었어요. 침만 삼켜도 아프니까 먹는 걸 싫어할 수도 있어요. 주사는 지금 상태로는 필요 없을 것 같아서 약만 처방했어요.”
“또 달리 조심할 건 없을까요?”
“찬물 먹이시지 말고 미지근한 보리차 자주 주시구요, 먹기 싫다면 억지로 밥 먹이지 마시고 죽 같이 부드러운 거 먹이세요.”
“예.”
진료가 끝나자 아이 엄마가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 연후에게 인사를 시켰다. 
“선생님께 인사해야지.”
“안녕히 계째요.” 
아직 말끝이 여물지 않은 아이의 인사에 연후가 일어나면서 볼을 매만졌다. 보드라운 뺨이 만져지자 미소가 따라 퍼졌다. 
“잘 가. 가세요.” 
연후가 아이와 아이 엄마에게 인사를 챙기고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려는데 윤 간호사가 호들갑을 떨며 들어왔다. 윤 간호사는 모든 일에 놀라워하는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다. 지금도 별일 아닌 일로 유난을 떠는 것이라 생각한 연후는 모니터를 보며 마우스를 움직였다.
“선생님, 저기 저것 좀 보세요.” 
“왜, 무슨 일 있어?” 
“아이 참.” 
윤 간호사는 다짜고짜 연후의 손목을 끌고 창가로 데려갔다.
일 층 커피숍 앞에서 촬영을 하는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여러 개의 조명등이 세워져 있었고 번쩍이는 반사판을 든 사람도 보였다. 꽃망울이 맺힌 초봄인데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두꺼운 파카 차림이었고 담요를 뒤집어쓴 사람도 있었다.
주인공인 듯한 남자에게 조명 불빛이 쏟아졌다. 대본을 보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남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뭐 찍어?” 
“드라마요. 수요일에 하는 미니시리즈요. 이정우 알죠? 영화배우 이정우가 드라마에 나온다구요.”
“이정우?” 
연예인에 관심이 없어 미류 말고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연후는 그 사람이 누구더라 하고 잠깐 생각을 했다. 
아, 이정우! 
그제야 뭔가가 생각이 난 듯 연후는 자신의 손바닥을 부딪쳤다. 왜 저놈은 연기파고 나는 얼굴마담이라고 하냐고 미류가 성토를 해대던 것이 떠오른 것이다. 
소위 국민배우로 불리며 화려한 스캔들로 늘 연예정보 프로그램에서 첫 머리를 장식하는 사람이다. 조각처럼 완벽한 미남은 아니지만 조화를 잘 이룬 외모에 팔색조처럼 다양하게 변신하는 연기력. 다작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작품에 더 목을 매고 있었다.
“<햇살>이라고 입양아 다룬 영화로 대종상도 탔잖아요. 정말 모르세요?”
“알아. 나도 대한민국 국민인 걸? 국민배우, 이정우 알아.” 
그렇게만 말하고 연후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윤 간호사는 아쉬움이 남는 듯 연신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서방님을 본 아낙처럼 두 손을 꼭 잡고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을 보던 연후가 픽 웃더니 윤 간호사를 불렀다. 
“윤 간호사, 김 선생님한테 내가 부탁한 거 있다고 하고 가서 보고 와.” 
“어머 정말요? 선생님 그래도 돼요?” 
윤 간호사는 손을 모으고 어린애 마냥 팔짝팔짝 뛰기까지 했다.
“그래, 빨리 갔다 와. 얼른 와야 돼! 괜히 나까지 김 선생님한테 잔소리 듣게 하지 말고. 또! 갔다 와서 보고 온 티 내지 말구. 오키?” 
“오키!” 
윤 간호사가 쪼르르 방을 빠져나가자 연후는 입가에 미소를 걸고 고개를 설레설레 젓다가 모니터로 진료 기록을 확인했다. 
한참 동안 마우스를 움직이다 손목시계를 보고는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전화가 연결되자 바로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 난데, 시끄럽네?” 
“나 지금 뒤풀이 중이야. 오늘 촬영 끝났어! 아씨! 조용히 좀 해!” 
투덜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장소를 옮겼는지 시끄러운 소리가 사라졌다.
“어쩌지? 나 오늘 늦게 갈 것 같은데.” 
“언제는 빨리 들어왔던 사람처럼 말하네. 재미있게 놀다와. 아, 이거 너무 불공평한 거 아냐? 난 일해야 하는데 자기는 놀기나 하구. 불공평해.” 
연후가 별 생각 없이 한 ‘자기’라는 말에 미류의 입이 헤벌쭉해졌다. 고집 센 연후는 웬만해서는 자기라고 부르는 법이 없었다. 둘만 있을 때도 아무리 자기라고 불러봐, 여보라고 해봐 하며 꼬드기고 화난 척 겁을 줘도 너 하려면 해라, 난 못한다고 고수하는 여자가 연후다.
“자기? 연후야 한 번만 더 불러봐.” 
“말이 그렇다는 거지. 됐어, 꼭 중요한 말은 안 듣고 이상한 것만 잡고 늘어져 정말.” 
“야, 나 자기 맞잖아? 들어가서 곱빼기로 받아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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