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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선 지음도서출판 가하201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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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 979-11-295-165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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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 소개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너란 더러운 늪에서 빠져나왔는데, 왜 후회를 하지?”
지금껏 누구에게도 마음 한 자락 줘본 적 없는 남자, 설하준. 그런 그의 마음을 단번에 뒤흔들어버린 여자 윤지서. 그녀에게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빼앗아올 만큼 욕심이 나 그녀를 결국 가졌다. 하지만 그의 지독한 소유욕은 결국 파멸을 부르고야 마는데…….
“그 녀석이 얼마나 잘해주었지?”
“당신…… 오해하고 있어요. 승민 오빠와 난 그런 사이가 아니란 말이에요. 내 말 들어봐요.”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어. 처음에는 우연히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너…… 너는 그 녀석과 호텔까지 드나들었어!”
“오해예요.”
“오해? 길 가는 사람 다 붙잡고 물어봐. 어떤 사람이 그런 상황에서 네 편을 들어줄지. 지금만 해도 그래.”
“내…… 내가 다 설명할게요. 설명할 수 있어요.”
2. 작가 소개
서미선
필명 소나기
사람들과 수다 떠는 것을 가장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세 남자와 매일 싸우는 게 하루 일과.
▣ 출간작
〈후견인〉, 〈루비레드〉, 〈잔인한 사랑〉, 〈가면〉, 〈카인과 아벨〉, 〈부부〉, 〈지독한 거짓말〉, 〈피의 베일〉, 〈넌 내게 지옥이었어〉, 〈되찾은 약혼녀〉, 〈아내〉, 〈레드 러브〉, 〈백설화〉, 〈도령〉, 〈홍분지기〉 외 다수
3. 차례
#프롤로그
#일장
#이장
#삼장
#사장
#오장
#육장
#칠장
#팔장
#구장
#십장
#십일장
4. 미리 보기
진 사장의 말에 대회의실로 들어가자마자 준비는 끝나 있었다. 최대한 편한 자세로 앉아 자리에 놓여 있는 서류를 들어 펼쳐보는데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높았던 소리가 진 사장과 그를 본 직원들의 소리가 잦아드는 것이 느껴졌으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앞에 놓인 서류를 펼쳤고 놀라운 집중력으로 읽어 내려갔다.
“사장님?”
나지막하게 부르는 소리에 보고 있던 서류를 치우고 회의를 진행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들의 소개가 이어졌고 외주 디자이너의 이름이 들린 순간 하준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익숙한 이름이다. 세상에 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사람은 참 많았다. 하지만 자신을 철저하게 망가트린 사람은 딱 하나였다. 그래서…… 그래서 관심이 가는 거라 애써 조각난 자존심을 위로했다.
진 사장의 칭찬을 받았던 이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그의 눈동자가 카메라의 파인더처럼 움직여 한 사람 한 사람 확인해갔다. 순간 누군가 목덜미를 꽉 눌러 숨을 쉴 수 없었다. 앞이 흐릿해지면서 순간적으로 주위의 사물이 보이지 않았다. 하마터면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설 뻔했다. 놀란 문 실장이 자신을 부르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몰랐다.
윤지서! 잘못 보거나 들은 것이 아니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 전 부인이었던 여자가, 매일매일 가슴속과 머릿속을 헤집으며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는 여자가 바로 제 눈앞에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실패란 것을 맛본 적 없던 자신에게 좌절감을 안겨준 여자. 잊을 수 있다고,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지독한 악몽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던 5년의 노력이 지금 눈앞에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그는 그녀가 남겨놓은 상처 때문에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데 그와 반대로 그녀는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머릿속에 그려놓았던 그림이 실제로 눈앞에서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그가 처음으로 동요를 보이자 문 실장이 걱정스레 그에게 말을 걸었고, 그에 하준은 가까스로 의식을 차렸다.
“사장님?”
딱딱하게 굳은 몸이 목소리에 반응하듯 눈동자를 돌렸다. 잠깐의 움직임이었는데 목에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난 거 같았다. 딱딱하게 굳은 그와 반대로 그녀는 곁에 있는 남자를 향해 활짝 웃고 있다. 저 웃음과 눈길과 손길…… 여기에 왜 저 여자가 있냐고 당장 내보내라는 말이 터져 나올 것 같은데 그는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참아냈다.
그녀 역시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는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입가에 머물렀던 미소가 얼음이 녹듯 조금씩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 눈가에 어린 긴장감……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던 눈동자가 그에게로 와 꽂힌 순간, 그는 정신을 잃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무심한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잠시 몸이 나뭇가지처럼 휘청거렸다. 먼저 정신을 차린 그의 눈동자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상대를 얕잡아 보듯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어렸다 사라졌다. 놀란 차 팀장이 그녀 곁으로 다가가는 것을 보며 앞에 놓인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언제부터 시작된 갈증인지 몰랐다. 너무나 오랜 세월 갈증에 헤매다 보니 해갈에 대한 열망조차 잊고 산 지 오래다. 그런데 지금 갈라졌던 바닥에 물기가 스며들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차 팀장을 향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굳었던 얼굴에 화색이 돌아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훅 불면 날아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위태로운 광경이었지만 그는 냉담하게 우위에 선 사람답게 지켜보았다. 그녀 곁으로 다가가는 남자들을 보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회의 진행하시죠.”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녀의 눈동자가 불안스럽게 흔들렸다. 곁에 선 남자에게 뭔가 말하는 것이 보였다. 등을 보이고 있어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다시 정면으로 몸을 돌렸을 때 서류를 잡고 있는 손끝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이 멀리서도 다 보였다.
“차 팀장님?”
“네.”
괜히 차 팀장을 불러 빨리 회의 진행시켜줄 것을 다시 한 번 부탁한 뒤 회의에 집중하기 위해 정면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겉으로 냉정하고 태연해 보였으나 그 역시 그녀를 봤다는 충격으로 머릿속이 텅 비었다. 컵을 다시 입으로 가져가려던 그는 자신이 생각 이상으로 세게 컵을 움켜쥐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제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냉정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에 그때까지 조용하던 분위기에 냉기가 더해졌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지서가 몸을 똑바로 세웠다. 회의실 안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긴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사회를 맡은 차 팀장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를 소개했다.
“지&경의 대표 중 한 분인 윤지서 대표가 발표를 하겠습니다.”
‘겁에 질렸군.’
다른 사람의 눈에는 평소와 다름없는 듯이 보였지만 그에게는 그녀의 상태가 그대로 읽혔다. 찬찬히 훑어 내려가던 눈동자가 살짝 찌푸려졌다. 머리카락이 짧아졌고 저 몸은 뭐지? 첫 충격이 가시고 나자 그는 냉정한 눈으로 그녀를 관찰할 수 있었다. 바늘 끝처럼 날카로운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마른 입술을 살짝 무는 지서가 보였다.
‘제발 그만 봐.’
그녀는 온몸으로 그를 향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