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아니, 바보는 약도 없습니다. 저런 건 아무도 못 고쳐요.”

지난겨울의 ‘그 사건’에 대해 알아내려다가 엉겁결에 미요 슈슈와 케이의 사랑의 메신저를 하게 된 지아. 사랑의 메신저 노릇을 훌륭하게 수행하는 것도 좋지만, 교내 최고의 인기남 쥬세페와 단둘이 보트에 오르는 건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고!

한편 실종된 여학생 일레인과 나오미 공주와의 연관성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 이안은 숨겨진 ‘그 사건’에 대한 진실에 다가가기 시작하는데……. ‘사랑의 메신저와 유령 소동’! 그리고 ‘위험천만 연극제’를 세인트 우리 기숙학원 2권에서 만나보세요.

어둠 속에서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자기가 무력하다고 생각되면 다른 사람한테 도와 달라고 하면 돼. 넌 그런 것도 모르나?”

무덤덤한 그 말을 들은 순간 무언가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답을 해야 하는데 입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천천히 침대 위로 몸을 누이자, 차가운 시트가 내 몸을 휘감았다.

나의 침묵을 대답이라고 여긴 듯, 그는 더 말하지 않고 문을 닫았다.

복도를 울리며 그의 발소리가 사라져 갔다.

굵은 빗줄기가 창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나는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남겨졌다.

2. 작가 소개

빈즈(Beans)

취향에 맞는 책을 찾고 찾다, 어느 날 아예 직접 글을 써버리기로 결심, 웹 연재게시판에 첫 글을 올린 후 3년간 꾸준히 집필한 소설이 ‘세인트 루이 기숙학원(Saint Louie Academy)’이다.

개인적인 욕심에 시작한 글이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개인지 제작과 eBook 발간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글을 쓰는 것보다는 읽는 것을 여전히 좋아하지만, 쓰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면 언제라도 글 쓰는 즐거움을 다시 누리고 싶다.

현재는 직장에 다니며 틈틈이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 삶의 소소한 낙이다.

▣ 출간작

세인트 루이 기숙학원

3. 차례

6. 사랑의 메신저와 유령 소동

#01.

#02.

#03.

#04.

#05.

#06.

#07.

#08.

#0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7-1. 위험천만 연극제

#01.

#02.

#03.

#04.

#05.

#06.

#07.

#08.

#09.

4. 미리 보기

일의 시초는 그저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언제나처럼 나의 호기심이 시발점이었지만 알면서도 그만둘 수 없는 게 또 호기심의 특징 아닌가.

중간고사도 끝나고, 전교 3위라는 영예를 얻은 나는 갑자기 우리 반의 인기인으로 부상했다. 반 3등이 된 쥰메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동급생들의 환대에 기쁘다기보다는 그저 어리둥절했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순식간에 전교 30등 바깥으로 밀려난 리지 골드먼은 대놓고 나를 무시하거나 음험한 시비를 걸곤 했다. 그렇지만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비밀 시험지만 믿고 공부를 열심히 안 한 그녀에게 나는 어떤 동정도 느낄 수 없었다.

시험이 끝나고 나서 수업 분위기도 한결 느슨해졌으므로 나는 마음이 편안했다. 선생님들도 대체로 비슷한 기분인 모양이었다. 숙제의 양이 확 줄어들고, 매 시간 보던 퀴즈들도 일시적으로나마 뜸해져 며칠간 한가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 일’은 그러던 중 우연히 일어났다.

오후 수업이 끝나고, 나와 쥰메이는 교실을 빠져나와 계단으로 향했다. 우리는 티타임 메뉴에 관해 얘기하던 중이었다. 수다에 열중하느라, 나는 누군가 우리 앞을 막아선 것도 알지 못했다. 먼저 고개를 든 쥰메이의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졌다. 그 때까지도 나는 별 생각 없이 옆으로 비켜나 가던 길을 가려고 했다. 뒤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불러 세우지만 않았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야, 너 거기.”

“나?”

나는 반사적으로 물었다. 초면에 반말로 말을 거는 사람에게는 똑같이 반말로 응대해라-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그렇게 응수한 다음에야, 이번에는 그게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곳에는 사납게 생긴 키 큰 소년 하나가 우리를 쏘아보며 서 있었다. 그는 특이하게도 교복 재킷 안에 흰색이 아닌 까만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그는 학생이라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 시선을 잡아끈 것은 그의 왼쪽 눈 위를 가로지르는 기다란 상처. 험악하게 치솟은 눈썹산에서부터 눈 아래까지 비스듬히 그어진 자국은 한때 상당히 깊은 상처였음을 짐작케 했다. 결국 그의 전체적인 인상은 마피아, 혹은 그 비슷한 무엇……?

‘칼자국인가?’

쥰메이는 겁에 질려 얼어붙은 채였다. 그 남자의 인상이 거칠긴 했지만, 단지 그 정도로 그렇게 겁먹을 리는 없었다. 아마도 그에 대해 뭔가 들은 거라도 있는 것일까? 굳이 듣지 않아도 그리 좋은 얘기일 것 같지는 않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차디찬 냉기가 흘러나왔다. 분명 계절은 봄인데 그가 말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몸이 떨렸다.

“그래, 너. 여기 3학년 D반이 어디냐?”

순간 내 어깨가 축 처졌다. 뭐야 이 녀석, 고작 길 한 번 물어보는 데 왜 이렇게 위화감을 조성하는 거지?

그 때 처음으로 나는 그의 얼굴이 어딘가 낯익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이런 사람을 학교에서 마주친 적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살기등등한 인상의 소유자라면 그 동안 내 눈에 띄고도 남았을 텐데……?

“3학년 교실은 한 층 더 올라가야 되는데?”

으으, 요놈의 입! 매서운 입담이 어쩌고 하던 쥬세페 씨 충고를 새겨들을 걸 그랬다. 하지만 어쩌랴, 대화를 할 때에는 상대방의 화법에 맞춰 주는 게 예의라고 배워 온 것을. 그런데 이 마피아 소년은 의외로 내 대꾸에 불쾌해하지 않았다. 쥰메이가 소매를 잡아당기는 것을 무시한 채, 나는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잘 그을린 얼굴에 끝이 살짝 휘어진 매부리코, 핏기 없는 입술이 호전적인 인상을 풍겼다. 섬세하니 잘생기진 않았어도 표정이 조금만 더 부드러웠다면 훨씬 호감을 줄 얼굴인데……. 세심한 관찰을 마친 다음에야 그를 어디서 만났는지 어렴풋이 기억이 날 것 같았다-엄밀히 말하자면 어디서 '봤는지'를.

“혹시 3학년 D반도 수업 끝났냐?”

내가 기억을 더듬느라 타이밍을 놓치자, 옆에서 쥰메이가 대신 대답을 했다. 그러나 입술이 너무 떨려 나도 그 남자도 그 말을 얼른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 그건 잘 모르겠어요……. 죄송하지만 저희가 조금 바빠서…….”

“그래? 그럼 가 봐.”

그는 무심하게 말하고 등을 돌렸다. 어쩌면 거기서 그를 보내 줬어야 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를 불러 세우고 말았다.

“저, 저기 혹시.”

“왜?”

그가 그렇게 내뱉자 눈가의 흉터가 한순간 붉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움츠러든 마음을 다잡았다.

“혹시……. 작년 겨울에 이 지역 경찰이랑 얽힌 적 있어?”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덩달아 그의 흉터 또한 짧아졌다. 언짢은 기색에 경계심이 더해져 위화감이 철철 흘러넘쳤다. 이런 류의 사람들일수록 자기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는 걸 싫어하는 법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반드시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었다. 그가 성큼성큼 내 앞으로 다가왔다.

“이 학교에서 그거 모르는 사람도 있냐, 응?”

……어라, 전교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나 보지? 그럼 왜 그 동안에는 내가 모르고 있었을까?

나는 작년 겨울 '뉴스토피아'의 사건/사고란에서 접했던 기사를 생각해 내려 애썼다. 손바닥만 한 사진 속에서, 반항적인 눈초리로 카메라를 응시하던 그의 얼굴-정확히 말하면 그의 흉터가 잊히지 않는다.

그는 이 근처 고속도로에 종종 나타나는 폭주족이었는데, 크리스마스 즈음 벌어진 탈주범 체포극에 우연히 휘말렸다. 탈옥한 범죄자와 경찰의 추격전은 내 관심 밖의 일이었다. 다만……. 당시 뉴스토피아 기자 하나가 주장한 사건 하나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주로 귀족들의 가십을 다루어 온 그 기자는 비슷한 시기 나오미 공주에 대한 납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흘린 바 있다. 그러나 공주가 만 하루 이상 세인트 루이를 비운 적이 없고 측근들도 입을 다물어 버려 그의 주장은 '해프닝'을 과장한 것으로만 여겨졌었다. 증거가 없으니 정식 기사로 신문에 실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평소 꽤 신임할 만한 기자라, 어머니께서도 관심을 갖고 듣기는 하셨나 보다. 나 역시 그 자리에서 얘기를 들은 사람 중 하나였다. 그 때 납치당할 뻔했던 나오미 공주는 흉악한 인상을 가진 남자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그 기자는 지나치듯 말했었다. 한 번 보면 잊어버리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 칼자국을 지닌 남자만큼 그 설명에 잘 맞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는 뚫어지게 자신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 질린 듯했다.

“뭐, 맞아. 덕분에 근신 처분 받았었어. 그건 왜 물어봐?”

말을 길게 하자 그의 날카로움이 약간 무디어졌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 일로 잠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괜찮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