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지금 이 순간부터, 저는 나이트의 직위를 반납하고 테오도르 폰 그린 백작에게 물려받은 귀족의 이름과 재산을 모두 포기하겠습니다. 그것이 테오도르 그린의 아들로서 져야 할 책임이라면, 저는 기꺼이 그에 따른 모든 결과를 수용하겠습니다.

황실 후계자 나오미 공주가 쓰러진 후 황궁에 다시 들어간 이안. 그는 기회를 잡아 폰 어윈의 연구소를 급습하지만, 이미 중요한 자료는 사라진 후였다. 이안의 쥬르문트 입학건에 문제가 생기고 후작파의 흉계가 더 교묘해지던 가운데 이안은 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나이트에서 물러나는데…….

내가 지금 걱정해야 할 사람은 이안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이제 이안 곁에는 마스터가 있고 세인트 루이에는 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나는 턱을 치켜들며 손을 꼭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닿은 반지가 차가웠다. 그건 내 마음이 허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날씨가 추워서라고, 나는 몇 번이나 자신을 타일러야 했다.

2. 작가 소개

빈즈(Beans)

취향에 맞는 책을 찾고 찾다, 어느 날 아예 직접 글을 써버리기로 결심, 웹 연재게시판에 첫 글을 올린 후 3년간 꾸준히 집필한 소설이 ‘세인트 루이 기숙학원(Saint Louie Academy)’이다.

개인적인 욕심에 시작한 글이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개인지 제작과 eBook 발간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글을 쓰는 것보다는 읽는 것을 여전히 좋아하지만, 쓰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면 언제라도 글 쓰는 즐거움을 다시 누리고 싶다.

현재는 직장에 다니며 틈틈이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 삶의 소소한 낙이다.

▣ 출간작

세인트 루이 기숙학원

3. 차례

20. 희생양

#01.

#02.

#03.

#04.

#05.

#06.

#07.

#08.

#09.

#10.

#11.

#12.

#13.

#14.

#15.

21. 여름 이야기

22-1. 강한 자와 승리하는 자

#01.

#02.

#03.

#04.

#05.

#06.

23. 나오미의 비밀

4. 미리 보기

덜컥.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위치가 바뀌었다.

황제가 먼저 자리를 잡고, 폰 어윈이 그 근처에 가 앉았다. 어쩔 줄 모르던 황후는 아들의 손짓에 이끌려 피아노 의자에 걸터앉았다. 이안은 바이올린 케이스를 치우고 피아노 옆에 기대어 섰다. 그의 물음이 방 안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꾸어 놓았다.

“황제 폐하, 어쩐 일로 이렇게 급히 저희를 찾으셨습니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왔다. 너와, 네 어머니에게 말이다.”

황후는 고개도 들지 않았다. 이안은 예의도 잊고서 황제를 빤히 쳐다보았다. 황제의 입에서, ‘비앙카’라는 이름이나 ‘황후’라는 호칭이 아니라 ‘어머니’라는 단어가 나온 것이 얼마만의 일인가? 그 낯선 느낌이 그에게서 할 말을 앗아갔다. ‘어머니’는 그의 곁에서 죄인처럼 시선을 떨어뜨린 아름다운 여인을 일컫는 말이었다-그러나 그 이전에, 그녀는 황제의 아내이자 공주의 어머니였다.

한참 후에야 이안은 이렇게 말을 바꾸었다.

“……저와 황후마마께 말입니까?”

움찔 어깨를 떤 것은 누구였을까. 그런 모자를 향해 보이지 않는 조소를 던진 것은 누구였을까.

안드레아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폰 어윈 후작은 이 자리에 필요한 사람이라 내가 불러온 것이다. 그보다, 혹시 닥터 제레미 맬서스에게서 연락이 왔었느냐?”

“……닥터 맬서스?”

이안은 그렇게 중얼거린 다음 퍼뜩 정신을 차렸다. 지금은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 순간에도 후작의 눈길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훑고 있었다. 흡사 먹이를 노리는 탐욕스러운 포식자의 시선으로-.

이안은 등을 곧게 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그는 쥬르문트 대학 측과 저의 입학 문제를 상의하는 중일 겁니다. 그 일을 마치고 나면 곧바로 제국으로 돌아오겠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나오미에게는 그가 필요하니까요. 그런데, 어째서 닥터 맬서스의 일을 물으시는 거지요?”

질문을 던지는 순간 그 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닥터 맬서스가 감감무소식인 이유는 황제가 그에 대해 묻는 이유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안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쉬었다.

‘설마, 황제 폐하께서는 마스터를 의심하시는 건가?’

안드레아스는 그를 외면하고 이번에는 황후에게로 향했다.

“비앙카, 닥터 맬서스와는 얼마나 아는 사이요?”

“…….”

-길고 갑갑한 침묵.

후작이 달래듯 그녀를 재촉했다.

“황후마마, 이건 매우 중대한 문제입니다. 폐하께서는, 비앙카 마마께서 그 쥬르문트 인과 죽은 폰 그린 백작이 막역한 사제지간이었음을 알고 계셨는지 물으시는…….”

“황후마마께 그 따위로 지껄이지 마십시오. 아랫사람들에게는 후작의 지위를 앞세워 거들먹거리시는 분께서 윗사람에게는 제대로 된 예의도 갖출 줄 모르십니까?”

“……이안!”

황제가 깜짝 놀라 외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안은 후작에 대한 적의를 거두지 않았다. 폰 어윈 후작, 저 자는 전부터 저런 식으로 그와 그의 가족들을 대해 왔었다. 자신에게 아버지-테오도르 그린의 죽음에 대해 귀띔할 때에도. 나오미의 생일날 어두운 발코니에서 비앙카 황후와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이안은 후작과 어머니 사이에 오가는 비밀의 정체를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면전에서 가족이 모욕을 당하고 있는데 이를 참아 줄 이유도 없었다. 그는 후작이 항복의 의미로 피식 웃음을 지을 때까지 상대방을 노려보았다.

“좋아, 좋아. 내가 졌네, 폰 그린 군. 황후마마께 무례하게 군 것처럼 보인다면 사과하겠네. 허나 폐하께서는 이미 용인해 주신 일일세. 다시 한 번 말하건대, 제레미 맬서스라는 자는 자네 아버지와 각별한 사이였지-마치 자네와 그 쥬르문트 인이 절친한 것처럼 말이야. 그렇다면 황후마마께서도 그와 일면식이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걸 묻는 것이 그렇게까지 큰 잘못인가, 응?”

“……그래요, 제레미 맬서스를 알고 있어요.”

비앙카가 작은 소리로 끼어들었다.

남자들은 말을 멈추고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의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은회색 눈동자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지만 눈물이 내비치지는 않았다. 여인의 뒤에는, 그녀가 테오도르에 대한 믿음을 배반하고 스스로를 비탄과 기만에 빠뜨려 가면서 어렵사리 지켜 온 아들이 있었다. 폰 어윈은 그것을 약점 삼아 그녀에게 반쪽자리 진실을 털어 놓으라 요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안드레아스는 감추어진 내막은 몰랐지만 그녀가 아들을 누구보다 애틋하게 여긴다는 것만은 잘 알고 있었다. 이를 조금도 모른 채, 어머니의 떨리는 어깨를 의심스레 바라보고 있는 것은 그녀가 목숨을 걸고 낳은 아들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후작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곧 후회하게 되실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