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사람 마음도 고칠 수 있어요?

“어, 오빠. 점심은 먹었어?”

[그럼. 먹었지. 넌?]

“나도 먹고 지금 카페 가는 중.”

재희는 밝은 얼굴로 통화를 하면서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직원의 인사에 재희는 살짝 고개를 숙여 화답했다. 휴대폰은 귀에서 떼지 않은 채 두 눈으론 메뉴판을 훑었다.

“오빠, 이따 저녁에 만날 거지? 아메리카노에 샷 추가해 주세요. 아이스로요.”

통화를 하면서도 주문을 하는 건 잊지 않았다.

“응. 그럼 이따 봐. 응.”

통화를 종료한 그녀는 계산을 마친 뒤, 진동벨을 받아 아무 자리에나 앉았다.

향긋한 커피 향이 콧속에 가득 밀려들었다.

몇 분 기다리지 않아 진동벨이 울렸고 커피를 받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아, 날씨 좋다.”

파란 하늘에 떠 있는 하얀 뭉게구름에 속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제일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며 거리를 걷는 발걸음이 평소보다 더 가벼웠다.

* * *

카페 ‘투맨(Two Man).’

투맨의 실질적인 사장 윤혁은 방금 나간 여자 손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요새 자주 온단 말이야. 우리 집 커피가 좀 맛있긴 하지.”

윤혁은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단골손님뿐만 아니라 카페에 두 번 이상 방문한 손님들의 얼굴은 거의 다 기억하고 있었다.

재희는 최근 들어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오기에 정확히 기억하는 거였고.

“근데 얜 언제까지 안 나올 셈이야? 집 안에 꿀단지라도 숨겨 놨나.”

말은 이렇게 하지만 동업자인 친구가 카페를 창업한 이후로 한 번도 코빼기를 안 비추니 걱정이 되었다.

윤혁은 휴대폰을 들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걱정하는 표정이 가득한 얼굴로.

지이이잉. 지이이잉.

시끄럽게 울려대는 진동 소리에 해준은 눈도 못 뜨고 한쪽 팔을 뻗어 협탁 위를 더듬거렸다. 실눈을 뜬 그는 어렴풋이 보이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스피커폰으로 돌렸다.

[여보세요? 마 사장, 너 진짜 안 나올 거야? 어?]

받자마자 안 나올 거냐고 묻는 윤혁에 해준은 반쯤 걷어진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 덮고 말했다.

“어…… 안 나가…….”

[뭐야. 너 잤어? 해가 중천인데 아직도 자냐! 얼른 일어나!]

“……엄마야 뭐야…….”

엄마한테나 들을 법한 잔소리를 친구한테 듣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확 끊어 버리고 싶은데 그것마저도 귀찮았다.

여전히 해준이 잠에 취해 있는 사이에도 윤혁의 말은 계속되었다.

[마 사장님, 네가 하도 화를 많이 당해서 집에만 있으려는 건 인정해. 근데 사람이 최소한의 사회생활은 해야 하지 않겠냐? 그동안은 내가 너 걱정돼서 아무 말 안 했는데, 이젠 좀 해야겠다. 걱정되는 건 둘째치고, 너 카페 나와.]

“…….”

[야, 너 내 말 듣고 있어?]

“…….”

[저기요, 여보세요? 마 사장님? 마해준!]

해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결국 윤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귀가 따가울 정도의 소리에 해준은 그제야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나중에. 나중에 나갈게. 좀 봐줘라.”

[……하아……그래. 내가 나오란다고 나올 마해준이 아니지. 푹 자라. 영원히.]

진심인 것 같은 윤혁의 말을 끝으로 통화는 끊겼다.

“……잠 다 깼네.”

계속 자려고 했으나 이미 잠은 다 달아나 버렸다.

해준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쭉 기지개를 켰다. 탈의한 상반신의 근육들이 일제히 그의 동작을 따라 솟아올랐다. 선명한 식스팩까지는 아니지만 연하게 자리 잡은 식스팩도 꿈틀거렸다. 거의 운동을 하지 않은 남자의 몸치고는 괜찮은 수준이었다.

하품까지 크게 한 그는 침대에서 나와 다시 한번 스트레칭을 했다.

새벽에 잠을 설쳐 피곤한 상태였지만 한번 잠이 달아나 버리면 다시 잠들기가 힘들었다.

이왕 일어난 거 씻고 하루를 시작하기로 했다.

오늘은 또 뭘 하며 시간을 보낼까.

머릿속으로 일정을 정리하면서 해준은 욕실로 들어갔다.

* * *

잔잔한 클래식이 흘러나오는 공방.

재희는 수강생들에게 에코백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는 중이었다.

수강생들은 20대부터 50대로 연령층이 다양했다. 그런데 오늘은 50대 아주머니 세 명을 상대로 하게 되었다.

“여기서 바늘을 조금씩 옆으로 이동하면서 박음질해 주시면 되구요, 잘 못 하시겠으면 말씀해 주세요.”

“네.”

재희의 다정한 음성과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에 수강생들도 마음 편히 바느질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박음질에 열중하던 순간, 청아한 풍경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어머, 윤이 왔네!”

한 아주머니가 들어온 사람을 보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안녕하세요.”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꼬마 손님이었다. 올해로 여덟 살이 된 윤은 재희의 공방에 자주 오는 단골이었다. 그래서 몇몇 수강생들은 윤의 얼굴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윤아, 오늘은 무슨 일로 왔어?”

자연스럽게 제 옆에 앉은 윤에게 재희가 눈높이를 맞추고 물었다. 윤은 대답 대신 먼저 들고 온 인형을 내밀었다.

“라노 팔이 부러졌어요. 선생님이 고쳐 주세요.”

“아, 라노 팔이 부러졌구나.”

윤이 내민 공룡 인형은 한쪽 팔의 솜이 다 삐져나온 상태였다.

라노는 티라노사우루스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하지만 팔이 부러져 티라노사우루스다운 위용을 뽐내지 못하고 있으니 윤은 마음이 아팠다.

“알았어. 선생님이 예쁘게 고쳐 줄게.”

재희는 약간 시무룩해 있는 윤이 귀여워 흐뭇하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공방에서 수강생을 모집해 수업을 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아이들이 아픈 인형을 가지고 오면 고쳐 주기도 했다. 아팠던 인형이 새 상태로 말끔히 돌아간 걸 볼 때의 아이들의 모습에 보람을 느껴서 하고 있는 거였다.

“선생님, 저 과자 먹어도 돼요?”

윤이 테이블 중앙에 있는 다과를 가리켰다.

“그럼. 먹어도 되지. 자.”

재희는 다과 바구니를 윤의 앞으로 놔 주었다. 윤은 짭조름한 맛이 나는 쌀과자를 하나 까서 오도독 먹었다.

‘애는 애구나.’

공방에 있는 모두가 엄마 미소로 윤을 바라보았다. 오물오물 씹는 모습이 귀여워 절로 나오는 웃음이었다.

윤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조용히 과자만 먹어 갔다.

“윤아, 이것도 마셔.”

“감사합니다.”

혹시나 목이 멜까 봐 재희가 오렌지 주스를 손에 쥐여 주었다. 예의도 바른 윤은 입에 있던 과자를 다 씹어 넘기고 주스를 쪽 빨아 먹었다.

네 명의 여자가 에코백 만드는 것도 잊고 윤을 보기에 바빴다.

“선생님.”

주스로 목을 충분히 축인 윤이 홱 고개를 돌려 재희를 쳐다보았다.

“응?”

너무 쳐다봤나 싶어 재희도 찔렸고 수강생들도 다시 바느질에 심혈을 기울였다.

조금의 뜸을 들인 후, 윤의 입술이 열렸다.

“사람 마음도 고칠 수 있어요?”

사람 마음?

여덟 살 꼬마 아이가 한 말의 의미가 뭔지 몰라서 재희는 눈만 깜빡였다. 수강생들에게 눈빛으로 도움을 청했지만 그들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제발 고칠 수 있다고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윤의 눈을 보니 거짓말을 해서라도 고칠 수 있다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제 양심이 아이에게 거짓말을 하는 건 허락하지 않았기에 재희는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어쩌지? 선생님은 사람 마음은 안 고쳐 봐서 모르겠는데.”

“우리 라노 고치는 것처럼 마음도 꿰매면 안 돼요? 아, 아프겠다…….”

제가 말해 놓고 아프겠다며 시무룩해지는 윤.

마음을 고쳐 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 걸까.

의사가 아닌 자신에게 물어볼 정도면 진심으로 그럴 사람이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아.”

이번엔 재희가 윤을 불렀다.

사람의 마음은 고칠 수 없지만, 이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윤이가 마음을 고쳐 주고 싶은 사람이 선생님은 누군지 몰라. 근데 윤이가 그 사람 옆에 있어 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

윤은 아무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