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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프롤로그 - 2년 전 제주에서
쏴아-!
시원한 파도 소리가 사방을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기타 소리, 이야기소리, 까르르 웃는 소리가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정겨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지은은 저도 모르게 한껏 미소를 지었다. 청량한 제주의 파도 소리를 머금은 호텔 정원 여기저기에는 삼삼오오 팀을 이룬 청년들이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다음 무대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곳은 ‘음악 밴드결성 프로젝트 오디션’이 한창 진행 중이었고, 젊음의 패기와 열정이 용솟음치는 곳이었다.
“이지은 실장.”
부르는 소리에 지은은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함께 차에서 내려선 이태호 대표. 그녀를 이 오디션 현장으로 데리고 온 것은 그였다. 참가자들이 먹고, 자고, 연습하고, 무대에 서서 경연을 펼칠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상당한 제작비를 지원한 실세. 자신의 상사이자, 자신의 유일한 혈육.
“이만 들어가도록 하지. 계약서는 잘 챙겨 왔겠지?”
“네. 그런데 정말로 한 부만 있어도 되는 걸까요? 대한민국의 음악 영재들이 여기에 다 모여 있는 것 같은데….”
지은은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영상으로 참가자들의 모습을 훑고 온 참이었다.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실력을 뽐내고 있었다. 기타, 베이스, 보컬, 드럼같이 밴드에 있을 법한 악기들은 죄다 모였다. 비브라폰, 색소폰, 클래식 기타, 바이올린, 첼로, 심지어 이름 모를 다양한 타악기 등 밴드결성에 생각지도 못한 악기들까지 총동원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악기들이 기가 막히게 밴드음악에 어울리는 것에 지은은 얼마나 소름이 돋았는지 몰랐다.
그랬다. 실제로 오디션에 도전한 참가자들은 상당한 실력자들이었고, 그들이 함께 만들어나가는 무대 하나하나가 소름이 돋게 할 만큼 레전드 무대들이었다.
업계에서 기획 능력을 인정받은 까치집 엔터테인먼트, 그 기획사의 대표인 이태호가 탐낼 만한 인물이 수두룩했다. 지은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그가 단 한 부의 계약서를 준비하라고 했다는 것이 의아했다. 계약하고 싶은 인물이 단 한 명뿐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너의 귀를 한번 테스트해 볼까?”
태호가 재미있다는 듯한 얼굴로 지은에게 웃어 보였다. 지은은 고인 침을 꼴깍하고 삼켰다.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이 딸이라고 밝히지 않은 그의 말 한마디에 지은은 긴장했다. 그를 만족시켜야 한다. 그를 기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늘 고군분투했고, 그 노력이 몸에 밴 지은은 저도 모르게 두 눈에 힘을 주었다.
“어이쿠, 이 대표님, 오셨습니까?”
담당 PD의 인사 뒤에 제작진들의 소소한 인사들이 뒤따랐다. 태호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 뒤에서 지은도 고개를 숙여 보였다.
“보내주신 영상들은 잘 보았습니다. 지난주 방송이 시청률 최고를 찍었더군요. 앞으로 시청률이 얼마나 더 오를지 제가 다 긴장이 됩니다, 허허허.”
태호의 호탕한 웃음에 제작진들이 덩달아 웃어 보였다. 담당 PD는 존경해 마지않는 눈으로 태호를 우러러보았다.
“대표님이 저희의 비전을 인정해주시지 않았다면, 그래서 거액의 제작비를 턱 하니 주시지 않았다면 이런 행복한 자리를 만들지도 못했을 겁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담당 PD의 추켜세움에 태호의 어깨가 으쓱해졌다.
“저도 행복합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가요계를 이끌어 갈 인재들을 살피기에 이만큼 좋은 현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정말 좋은 아이디어를 내주셨습니다.”
거액의 제작비를 투자하고도 거드름을 피우지 않는 태호를 모두가 좋아했다. 누구를 합격시키고, 누구를 탈락시키라는 은밀한 지시라도 내릴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렇게 의심을 품었던 일부 제작진들도 이제야 현장에 나타난 그에게 호의의 미소를 기꺼이 보냈다. 영상으로만 오디션을 감상했던 그가 어떤 압력도 없이 그저 무대를 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그가 이곳에 온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다양한 기획사들의 실세들이 동시에 이곳으로 모여들기는 했다. 그래서 호텔 내부가 더욱 어수선하고, 참가자들의 긴장감이 높아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제작진은 나쁘지 않은 분위기로 받아들였다. 어차피 참가자들의 마지막 목표는 기획사와의 계약이고, 데뷔였다. 그들에게 현실감이 넘치는 경쟁을 시킬 수가 있으니 더 좋은 무대, 더 치열한 경쟁이 카메라에 담기게 될 것이다.
“심사위원님들의 혀가 날개를 달았더군요.”
신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 심사위원들을 두고서 태호가 말했다. 담당 PD가 매우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제작비가 넉넉하니 원하는 심사위원들을 마음껏 모실 수 있었습니다. 여기 앉으시죠, 대표님. 이제 곧 탑텐 무대가 시작될 겁니다.”
담당 PD가 적당한 자리를 안내했다. 태호는 그곳에 흔쾌히 앉았고, 그 옆에 지은도 함께 앉았다.
“어때?”
서너 개의 무대가 지나가자, 태호가 작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다들, 너무 훌륭해요. 이곳에서 처음 만난 사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합이 좋네요. 실력자들이 마음을 맞추면 이런 놀라운 무대가 만들어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
태호가 되묻는 말에 지은은 움찔했다. 그렇지 않다는 의미인 걸까? 자신의 생각은 다르다는 뜻인 걸까? 저렇게 훌륭한 무대를 보고서 어떻게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거지? 지은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앞을 응시했다.
다다당~! 귀를 파고드는 기타 소리에 지은은 어깨를 들썩였다. 이어지는 현란한 기타 연주에 지은의 두 눈이 커졌다. 그리고 그 기타 연주에 얹힌 목소리 때문에 지은의 시야가 좁아졌다.
노래하는 이의 얼굴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깊이가 남다른 두 눈이 이따금 감겼다가 떠졌다. 함께 노래하는 멤버와 눈을 마주치며 웃는 그의 미소 뒤에는 이 세상의 것이라고 믿기 어려운 빛이 비치고 있었다. 기타 현 앞에서 열정적으로 위아래를 오가는 그의 팔에는 생기가 넘쳐흘렀고, 코드를 짚는 그의 왼손가락은 길고 가늘었지만 현란하면서도 힘 있게 현을 누르고 있었다. 지은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마 위에서 흔들리는 검은 머리카락, 따스함이 가득 담긴 두 눈, 신뢰를 안겨주는 오똑한 코, 적당히 벌어졌다 오므렸다를 반복하는 붉은 입술, 그리고 그 입술 사이로 빠져나오는 믿을 수 없는 소리. 슬픔으로 적신, 그러나 듣는 이로 하여금 위로를 얻게 하는,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듯한 유일무이한 소리.
“고경우?”
지은의 자그마한 목소리에 태호가 지은을 힐끔 쳐다보았다. 지은의 눈가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콧방울이 붉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지은은 코를 훌쩍였다.
태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슬픈 마음이 들어 눈물이 왈칵하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태호는 확신을 가졌다. 슬픔을 느끼는 동시에 위로를 받게 하는 목소리.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보물을 발견했다. 감정 표현에 인색한 이 아이가 이런 표정을 지을 정도라면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와아!”
유니크한 목소리가 노래를 끝내자, 감격을 숨기지 못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제야 지은은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옆에 앉은 태호가 매우 만족스럽게 두 손을 치켜들고 박수를 치고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심사위원석에 앉은 이들 모두가, 무대를 바라보고 있던 모든 제작진들이, 순서를 끝낸 참가자들과 순서를 기다리는 모든 참가자들이 일제히 같은 표정으로 환호하고 있었다.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 내는 이들을 바라보며 지은은 떨리는 숨을 천천히 뱉어냈다.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노래를 듣고 있었구나.’
조금은 민망한 웃음을 흘려보냈다. 노래를 듣는 동안 지은은 딴 세상에라도 다녀온 기분이었다. 나만을 위한 노래,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노래를 그가 부르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그 느낌은 다른 모든 이들도 함께 느낀 거였나 보다.
“아직 참가자들의 노래를 다 들은 것은 아니지만….”
지은이 태호에게 작게 이야기했다.
“이 계약서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바로 알겠네요.”
태호가 이맛살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10분간 휴식하도록 하겠습니다. 10분 뒤에 나머지 다섯 팀의 무대가 이어질 것이니, 다들 시간 맞춰 자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누군가의 외침에 촬영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일어나자.”
“네?”
의아한 마음으로 뒤따라 일어서는 지은에게 태호가 말했다.
“지금이 아니면 놓칠 수도 있어. 서둘러.”
지은은 때마침 앉은 자리에서 서둘러 일어서는 타 기획사 직원들의 움직임을 목격했다. 계약서가 들어있는 가방을 손으로 꼭 쥔 채 태호의 뒤를 따랐다. 태호의 걸음은 쫓아가기 힘들 만큼 빨랐다. 최선을 다해 쫓고 있을 때였다.
“아얏!”
지은과 부딪힌 누군가가 짧은 비명과 함께 한쪽 팔을 감쌌다.
“아, 미안해요. 괜찮아요?”
빠르게 건네는 사과에 상대방은 상당히 놀란 눈으로 지은을 바라보았다. 까치집 엔터테인먼트 이지은 실장. 지은의 목에 걸린 명찰을 확인하는 눈이 못마땅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지은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낯설지 않은 얼굴.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보는 듯한 시선.
“당신이 왜?”
지은은 자신을 알아보는 그녀가 누구인지 선뜻 떠오르지 않아 답답했다. 그러나 여유롭게 묻고 있을 형편이 못됐다. 이미 계약하기를 원하는 보컬과 만나 인사를 건네는 태호의 모습이 저만치에서 보이고 있었다.
“미안해요. 제가 좀 바빠서 이만.”
지은은 상대방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서둘러 태호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태호는 이미 그와 인사를 끝내고 가까운 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가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기 전에 지은은 그 방으로 들어갔다. 햇빛이 찬란하게 비쳐 들어오는 창가에 마주보고 앉은 두 사람이 동시에 지은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까치집 엔터의 이지은 실장입니다.”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인물에게 습관처럼 자기소개를 했다.
“저기 서 있는 이 실장이 고경우 군의 노래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빙그레 웃었죠.”
태호의 말에 경우의 시선이 다시금 지은에게 쏠렸다. 경우는 제 노래를 잘 감상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으로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이 실장이 보인 반응을 나는 믿는 바입니다. 계약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태호의 말에 닫히지 않은 문밖에서 웅성대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까치집 엔터의 대표와 이제 막 공연을 마친 고경우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은 참가자들이 앞다투어 달려와 두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탓이었다. 지은은 두 사람의 대화가 방해받지 않기 위해 방의 문을 닫으려고 했다.
“죄송합니다. 좀 비켜 주시겠어요? 죄송합니다. 뒤로 좀 물러나 주세요.”
지은이 인파를 밀어내며 조금씩 문을 닫고 있을 때였다.
“강세진과 저는 한 팀입니다. 세진이와 함께라면 계약하겠습니다.”
지은은 문을 닫다 말고 경우를 돌아보았다. 그의 강단 있는 얼굴을 보자, 조금 전 자신과 부딪힌 이가 누구인지 떠올랐다. 강세진. 고경우와 중학교 때부터 함께 노래하던 그의 여자 친구.
지은은 저도 모르게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교복을 입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중학생인 지은은 친구와 함께 밝은 얼굴로 달려가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달려간 1층 음악실 창문 앞은 이미 상당한 여학생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겨우 빈 곳을 찾아 들여다본 음악실 안에서는 똑같은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기타 하나를 들고서 악보를 뒤적이고 있었다. 그가 기타를 치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투박하지만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주변은 조용해졌다. 그의 목소리를 오롯이 듣고 싶어 하는 여학생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잠잠했다. 노랫말 하나라도 놓칠세라 두 귀를 쫑긋 세운 여학생들은 하나같이 아련한 추억에 젖어들고 있었다.
지은은 그때 눈물 한줄기를 주르륵 흘려보냈더랬다. 스스로도 놀라웠던 그 순간, 그 느낌이 너무도 좋아서 그날부터 날마다 점심시간이면 음악실을 찾았다. 그러나 늘 위로를 주고, 기쁨을 주던 그의 목소리가 혼자가 아니게 된 날. 어느 유명한 음악가의 딸이라는 아이가 그와 함께 노래하게 된 날부터 지은은 음악실을 찾아가지 않았었다.
그렇게 8년 전에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를 여기에서 다시 만났다. 8년이라는 시간 동안 강세진과 함께 노래하고, 강세진과 함께 오디션에 참가한 그와 이렇게 재회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세진이와 함께하는 게 아니라면 계약하지 않겠습니다.”
심지가 굳은 그의 단단한 얼굴 앞에서 태호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글쎄… 강세진 양의 노래는 내가 아직 제대로 들어보질 않아서….”
태호가 평소 그답지 않게 말을 얼버무렸다.
“다음 무대가 세진이의 무대입니다. 들어보시고 다시 말씀 나눠주십시오.”
경우는 정중히 말한 뒤에, 앉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태호의 눈썹이 못마땅하게 움찔거렸다. 그러나 이내 태호는 얼굴에 미소를 장착했다.
“그러죠. 촬영이 끝나면 이 방에서 다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경우가 해맑은 얼굴로 웃으며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그는 아직 문을 채 닫지 못한 지은의 옆을 지나갔다. 가볍게 묵례하는 그에게 지은도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태호가 기다려줄 거라는 희망을 품은 그의 얼굴이 환했다. 지은은 살짝 속이 상했다. 그가 까치집의 가족이 된다면 자주 볼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설렜던 마음이 우스웠다. 세진과 함께 부르는 그의 노래는 자신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8년을 함께 했으니 각별할 만도 하겠지! 칫!’
당당히 걸어 나가는 경우의 뒤통수를 보며 지은은 씁쓸한 맛을 느껴야 했다.
“이 실장.”
태호의 부르는 소리에 지은은 정신을 퍼뜩 차렸다. 내내 기분이 좋던 그의 심기가 상당히 뒤틀려있음을 단번에 깨달은 지은은 긴장했다.
“따라와. 그리고 로버트에게 내 말을 통역해.”
로버트? 한국계 미국인. 미국 현지에서 밴드 활동을 하며 유명해진 그가 상당한 출연료를 약속받고 심사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이곳에 참석하고 있었다. 지은은 의아했지만 묻지 않고 그를 따랐다. 그는 밴드 활동을 은퇴한 뒤에도 여러 영화 ost 작업에 참여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여전히 과시하는 인물이었다. 또한 그는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날카로운 심사평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의 sns 팔로워는 그가 음악을 할 때보다 지독한 독설가로 활동하는 지금이 훨씬 많았다. 그가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줄을 알면서도 섭외가 가능한 것은 그만큼 그의 독설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키기 때문이었다.
“하이, 로버트!”
태호의 부름에 음료를 마시던 로버트가 돌아가는 의자에 앉은 채로 몸을 돌렸다. 태호가 지은에게 통역하라고 눈짓을 한 뒤, 빠르고 낮게 말을 잇기 시작했다.
“저는 대한민국 기업인 주식회사 까치집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이태호라고 합니다.”
지은이 태호가 말하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영어로 로버트에게 말했다. 지은의 말에 로버트가 들은 적이 있는지 환한 미소로 태호에게 한 손을 내밀어 보였다. 그러나 태호는 그의 호의의 손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옆에 있는 지은이 당황을 느낄 만큼 태호의 태도는 권위적이었다.
“엄청난 돈을 축내면서까지 당신이 여기에 앉아 있는 이유를 잘 모르는 것 같군요.”
지은이 떨리는 마음으로 통역을 했다. 로버트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대체 태호가 로버트에게 무슨 말을 하려 하는 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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