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_운수 좋은 날

“내 이름은 시로이! 마음을 늘 새로이! 이 마음을 영원히!”

두둥- 탁- 두둥- 탁-

흥겨운 비트가 귀를 가득 채우고….

“내 이름은 시로이! 마음을 늘 새로이! 이 마음을 영원히!”

두둥- 탁- 두둥- 탁-

초심을 잃지 말자는 내 진심 어린 가사와 목소리가 환상의 궁합을 자랑하며 비트와 하나가 되고 있다. 와, 나 진짜 천재 아닐까? 플로우가 입에 착착 감기는 게 내가 들어도 좋다.

- 나와.

마지막 마디를 뱉어내고서 디렉팅을 기다렸다. 엔지니어 민성이 형도, 디렉팅을 봐주던 릴라 형도 단박에 O.K. 사인을 줬다.

“괜찮았어요?”

- 어.

드디어 끝. 났. 다! 이번 앨범 마지막 곡! 회심의 트랙!

“수고하셨습니다!”

“어, 수고했다.”

녹음 부스를 열고 나가서 민성이 형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하이 파이브를 했다. 정규 앨범이어서 작업 기간이 꽤 길었다. 형이 고생을 많이 했다.

아, 내가 누구냐고? 나는 래퍼다. 이름은 ‘백희성’이고 랩 네임은 ‘시로이’. 얼굴도 하얗고, 성씨도 ‘백’이라서, 하얀색과 관련 있는 단어들을 열심히 살펴보다가 그냥 발음하기 편한 일본어를 골랐다. 덕분에 혼혈 아니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데 토종 한국인이다.

“심바-, 언제 왔어?”

잠시 기지개를 켜고 시선을 돌리니까, 핸드폰을 손에 쥐고 실실 쪼개고 있는 심바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심바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최측근이다. 나와 같은 회사에서 프로듀싱 겸 작곡을 하고 있으며 본명은 ‘심바다’다. 활동명은 ‘deep’. 그렇지만 다들 그냥 ‘심바’라고 부른다. TMI지만 지금 내가 사는 집 소유자이기도 하고, 최근 네 살 연상의 유치원 선생님 여자 친구와 결혼 준비도 시작했다.

“심바, 어? 언제 왔냐니까? 나 보러 온 거 아님?”

“밥.”

“어?”

“밥 같이 먹으러 왔다고.”

오늘도 시니컬한 심바. 심바는 학교 다닐 때부터 공부도 잘했지, 잘생겼지, 돈도 나보다 잘 벌지…. 장점이 참 많은데 성격을 좀 빻았다. 심바를 볼 때마다 신은 공평하다는 걸 새삼 느끼곤 한다.

“다 끝났지? 나가자. 나 열라 배고파.”

“좀 기다려 봐. 나 방금 나왔잖아. 아직 들어보지도 않았어.”

“그럼 빨리 들어보던가.”

“아, 하여튼 심바 성격 급해. 기다려, 좀.”

심바 얘기를 듣다 보니까 나도 갑자기 배고파져서, 방금 작업을 마친 따끈따끈한 새 트랙 파일을 서둘러 열어봤다.

- 내 이름은 시로이! 마음을 늘 새로이! 이 마음을 영원히!

“아, 역시 플로우를 좀 바꾸길 잘한 것 같아. 형이 듣기엔 어때?”

“릴라 형, 시로이라는 애 알아?”

릴라 형에게 의견을 묻는데 심바가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 저거 꼽 줄 때마다 제일 먼저 꺼내는 소린데….

“아, 심바 또 왜-. 무슨 소리 하려고?”

“하핫, 형. 걔, 시로이 랩 들어봤어? 열라 구려. ‘고교 래퍼’ 나가도 예선에서 까이겠더라.”

그렇지, 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

“꺼져, 심바. 나 힙합 오디션 멘토 제안도 받았거든? 참가자 말고 멘. 토.”

“몇 번.”

“한 번. 지난 시즌.”

“10시즌 동안 한 번? 리얼? 난 그거 섭외 매일 오는데?”

“…….”

“하하하, 심바, 시로이 그만 까-. 그래도 힙합계의 아이돌인데-.”

“헤헷, 릴라 형, 내가 또 무슨 아이돌이냐?”

“귀척 그만해. 토 나와.”

“아씨, 심바 진짜 죽여 버린다?”

“아니, 이거 가사 아플 때 썼냐? 열라 유치해. 비트 뺏어서 다른 애 주고 싶다.”

“올드 스쿨이잖아-. 야, 그리고 이거 니가 준 거 아니거든? 시비 노노요.”

“그놈의 올드 스쿨….”

껄떡하면 저래…. 말만 좀 저렇게 하지 나쁜 놈은 아니지만, 가끔 진짜 한 대 치고 싶다.

“심바- 그만해. 타이틀인데 왜 기죽이냐? 이걸로 행사 다 찢겠다잖아-.”

“멋있는 우리 릴라 형…. 저렇게 사람 꼽 줄 정도는 아니지…?”

“잘 나왔어. 좋아. 다 들었으니까 진짜 밥이나 먹으러 가자. 너네가 밥 타령하니까 나도 배고파.”

“형이 없었다면 난 평생 힙찔이로 언더를 떠돌고 있었을 거야. 뭐 먹고 싶어? 나는 형 먹고 싶은 걸로 할래. 내가 살게!”

“갑자기? 하하하, 나 딱히 땡기는 거 없어. 희성이 너 뭐 먹고 싶은데?”

“하핫, 릴라 형, 몰라서 물어보냐? 시로이는 올드 스쿨 먹겠지-. 열라 좋아하잖아, 그놈의 올드 스쿨.”

“아씨! 심바!”

“하하하, 야, 심바 지 거 타이틀로 안 써서 저러는 거야. 처음 아니냐? 심바 거 타이틀에서 까인 거는.”

“아니야, 형. 저 새끼는 맨날 저래. 아니, 연애하면서 성격 좀 좋아진 줄 알았거든? 근데 개뿔, 이건 뭐 맨날 나한테만 시비 털어.”

들으라는 듯 릴라 형에게 지 욕을 하는데도, 여전히 핸드폰만 바라보며 실실 웃고 있는 심바였다.

“뭐냐? 내가 우습냐? 왜 쪼개?”

“아니, 우리 수정이 냄비 태웠대.”

“뭐야, 심바. 그게 좋냐?”

“귀엽잖아-. 지가 태워놓고 지가 승질 내는 게.”

“퍽이나,”

나한테 시비 걸다가, 혼자 웃다가…. 요즘 심바는 바빠도 너-무 바쁘다.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하던 심바가 저러는 건 처음이라 아직도 신기하다.

“야, 야- 심바, 희성! 진짜 그만하고 먹을 거나 골라 보라니까? 나 약속 있어. 밥 먹고 바로 가야 돼.”

“에엥? 형, 나 녹음 끝났는데 나랑 안 놀아줄 거야? 나랑 압구정 가자-. 가을 옷 많이 나왔대-.”

“미안…. 민지 기다려.”

“와-, 너무 한다. 심바 너는 아니지? 난 알아. 니가 말은 좀 걸레같이 해도 나 좋아하는 거.”

“아니? 수정이 퇴근 시간 맞춰서 데리러 갈 건데? 백화점 갈 거야. 화장품 사야 된대.”

“아, 그래-, 그냥 다 가 버려라-. 민성이 형, 저랑 지금 나가서 같이 밥 먹고 작업하면 안 돼요? 저 사람들 보내버리게요. 제가 살게요.”

“하핫. 나 잠깐 집 가야 돼. 미안. 만지는 건 이따 저녁에 와서 다시 할 거야. 메일로 보낼게.”

“형 마저….”

“민성이 형 오늘 애기 픽업하는 날이잖아. 삐졌냐? 형이 살게, 빨리 먹고 싶은 거 골라.”

“…그냥 김밥집이나 갈래. 비싼 거 먹어도 오늘은 맛없을 것 같아요.”

“하핫, ‘김밥 지옥’ 가자는 거지? 스페셜 정식으로 사줄게. 가자. 야, 심바! 일어나, 나가자-.”

릴라 형이 심바를 불러 세웠고, 그대로 모두 함께 녹음실을 빠져나왔다. 김밥 집으로 가는 길, 심바, 릴라 형 모두 아무 말도 없이 핸드폰에 코를 박고 걸었다. 나 혼자 정면을 응시하고 걸어가면서, 누군가 먼저 말을 꺼내주길 기다렸지만 다들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아서 괜히 서운해졌다. 편하게 연락할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왕이면 그게 여자 친구라면 더 좋았을 텐데…. 나도 핸드폰에 코 박고 걷고 싶다.

“…야, 심바. 수정이 누나 진짜 친구 없대?”

생각하다 못해 만만한 심바에게 먼저 슬쩍 얘기를 꺼냈다.

“소개해줬는데 니가 깠잖아.”

“내가 언제?”

“우리 수정이 유치원 같이 다니는 선생님. 기억 안 나냐? 치매야?”

“꺼져. 인별그램 하나 던져줬잖아. 그게 소개냐?”

“뭘 꺼져, 외모지상주의자 새끼. 너 만나보고 싶단 소리 안 했잖아. 얼굴 보고 그런 거지? 언젠 착하면 된다더니.”

“니가 할 말이야?”

“야, 나 내 사촌 동생도 소개해줬다?”

“…그건 내가 깐 거 아니잖아. 아-, 현주 좋았는데….”

“그러니까, 두 명이나 소개해줬잖아. 뭘 더 바래? 너가 계속 까이는 걸 어쩌라고.”

“야, 너 아까 릴라 형 얘기 못 들음? 나 인기 많아-.”

“아, 그럼 그중에 아무나 골라서 만나면 되겠네-. 인기 많으신 시로이 상-.”

“…개새끼, 진짜.”

심바한텐 까였고…. 다음은 릴라 형. 릴라 형 여친은 좀 어리긴 한데 어른스러웠지.

“릴라 형, 형은 주변에 아는 여자 사람 없어? 여자 친구 지인 중에서 누구 없나?”

“니가 스물일곱이지?”

“어.”

“음….”

“누구 있어? 어?”

“하하하,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 괜찮은 애들은 다 남친 있어.”

“아, 형-, 잘 생각해 봐, 형까지 이러기냐? 나 연상 연하 동갑 다 괜찮아.”

릴라 형을 붙들고 계속 소개팅을 조르고 있는데 심바가 또 끼어들었다.

“아니, 뭐 맡겨놨냐고-. 왜 자꾸 니 애인을 다른 사람한테 찾아?”

“아, 심바 너 때문이잖아-.”

“나 뭐.”

“니가 결혼 준비한다고 나랑 안 놀아주잖아-.”

“수정이랑 밥 먹을 때 껴주잖아-, 말은 바로 하지?”

“…니네 요리 연습하는 거 기미 상궁하라고 부르는 거잖아.”

“그건 맞아.”

바로 인정하니까 뭔가 더 열받는 느낌인데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심바 개새끼.”

“하핫,”

“개새끼라는데 좋아? 왜 웃고 난리?”

“하핫, 너 말고. 우리 수정이 귀여워서. 아니, 문자로도 쌍욕 한다? 무슨 한 바닥을 써.”

“욕 쓰는 거 꼴 보기 싫으면 하지 말라 해-.”

“아니, 진짜 너 일본인이야? 내가 언제 꼴 보기 싫대? 귀여워서 그래, 욕도 정성스럽게 하는 게.”

무슨 개소리냐고 다시 대꾸하려다 관뒀다. 내가 심바의 마음을 어떻게 알 것이며, 심바가 나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느냐 이 말이다.

“이모-, 여기 스페셜 정식 세 개요-. 아, 라볶이도 주세요.”

티격태격하면서 도착한 김밥 집에 자릴 잡고 앉았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심바랑 릴라 형은 다시 그들만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그 틈에 나는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주제는 아까랑 이어진다. 외롭다. 나는 왜 여자 친구가 안 생길까?

“친한 여사친 없어? 소개해달라고 어필 좀 해 봐-. 그래도 ‘시로이’라고 하면 반응 좀 있지 않겠냐?”

밥이 나오니까, 그제야 고개를 들고 입을 여는 릴라 형이었다.

“나 그럴만한 여사친 없는데?”

“왜?”

“…형, 시로이 진짜 없어. 나 시로이랑 10년 동안 붙어 다녔잖아? 주변에 여자 사람이라고는 한 번을 못 봤어. 있어도 다 음악 하는 사람들.”

“진짜? 말도 안 돼.”

“…….”

좀 쪽팔리지만 사실이다. 초중고 다 남녀공학에, 대학도 간호학과를 다녀서 여자 사람 밭이었는데 이상하게 친해진 친구는 아무도 없다.

“아니, 그래도 희성이 너 막 피처링 하면서 알게 된 연예인 많잖아. 그런 애들이랑 연락 안 해?”

“형…. 나랑 심바는- 그런 사람들이랑 음악적 교류는 가능해도 사석에서는 어울릴 수가 없어.”

“왜? 마음을 좀 열어-.”

“아, 형. 그건 진짜 아니야. 시로이가 말하는 게 그런 문제가 아니거든. 시로이나 나나 술 안 마시지, 담배도 안 하지. 밖에서 만나면 사람들이 재미없어해. 말도 잘 안 통하고.”

릴라 형의 핀잔에 심바가 나섰다. 이해가 안 가는지 갸우뚱하는 릴라 형에게 나도 관련 에피소드를 늘어놨다.

“나랑 심바랑, 딱 한 번 둘이 같이 작업했던 여자애랑 밖에서 만났었거든? 걔가 밥 산다고 해서. 근데 한 시간도 안 돼서 바로 일어났잖아.”

“나 그거 누군지 알 것 같은데? 너네 같이 작업한 사람 걔 누구냐…. 아! ‘시진’ 맞지? 걔 만났어?”

“어. 만났는데-,”

“이쁘더만-.”

“그럼 뭐해. 완전 진상이었어. 말도 마, 진짜.”

“…걔 입이 진짜 걸레야.”

심바는 내 얘길 듣다가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 건지, 젓가락을 놓고 바로 정색했다.

“심바는 원래 나가기 귀찮아했지만, 나는 사실 좀 기대했어. 그래서 막 심바 졸라서 같이 나간 거거든? 작업할 때도 실제로 만난 건 아니니까 궁금하잖아. 근데 완전 비호였어. 계속 담배 피우러 나가고, 야한 농담 엄청 많이 하고…. 진짜 깼어-. 코드 안 맞아.”

“다들 그러고 놀지, 뭐.”

“우리는 안 그러고 노는데? 아무튼 초면인데 그건 아니지-.”

“너네 참 신기해.”

“뭐가?”

“심바는 집돌이에 사람 가리고 말이야, 너는 노는 거 진짜 좋아하게 생겼는데 그렇지도 않고. 보이는 거랑 너무 달라. 걔 딴엔 텐션 올린다고 그런 거겠지. 잘 놀게 생겼잖아, 너희 둘 다.”

“…그런가? 아무튼,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안 맞는다는 게 핵심이야. 그런데 애들 다 그러고 논다며, 거기서 누굴 찾아?”

소개 좀 해달라는 얘기에서 연예계 뒷담화로, 거기서 다시 연애 얘기로 화제가 계속 바뀌었다. 신나게 떠들면서 배를 채우고 난 뒤 바로 앞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사 들고 회사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아까와는 다르게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희성이 마지막으로 연애한 게 언제냐?”

“나? 작년.”

“언제? 나 모르겠는데? 뻥치지 마. 3년 전 아니냐? 희성이 여자친구 얘기는 그때 마지막으로 들은 것 같은데?”

“…아니야, 형. 나 빨리 헤어져서 그렇지 작년에도 몇 명 만났어.”

“형, 사실이야. 쟤 금방 까여서 그래.”

“진짜로? 몇 명이나 만났길래? 뭐라면서 까였냐?”

“아-, 이 얘기하면 나 빡치는데?”

“뭔데? 바람났어?”

“…아니.”

“그러면?”

“…너무 착해서 싫대. 매력 없대. 죄다 그 소리야.”

“시로이 너는 너무 퍼줘서 그래. 현주도 그러더라? 성격 좋은 건 알겠는데, 다 자기 맘대로 하라니까 재미없대.”

“아니- 사랑하니까! 사랑이 죄야? 나 진짜 이해 안 가는 게, 잘해주는 게 왜 매력 없는 거야? 여자들 마음을 모르겠어, 진짜.”

“적당히 해야지, 멍청아.”

“타고난 성품이 훌륭한 걸 어떡해, 내가 심바 너냐?”

심바한테는 내가 정상이라고 실컷 우겼지만 솔직히 나도 안다. 누군가에게 호감이 생기면 간이고 쓸개고 나도 모르는 사이 다 빼 줘버리는 거…. 바로 호구 잡혀 버리는 거….

“만난 지 한 달도 안 된 애한테 맨날 가방 사주고, 금붙이 사주고…. 개호구야, 너. 다른 남자들이랑 몰래 술 마시는 데도 아무 말 없이 찾아가서 기사까지 해주잖아.”

“대리하러 간 건 작년 여름!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어쨌든. 있긴 있잖아.”

“…….”

“아니, 근데 그런 남자애들 보면 여사친 많던데? 희성이 너는 왜 아무도 없다 그러냐?”

“…학창 시절엔 음악 하겠다고 독학하느라 애들이랑 어울릴 시간이 없었고, 대학 가서는 클럽 공연 다니느라 정신없었어.”

“그냥 계속 음악이랑 사랑해라. 열심히 음악 해서 돈이나 모아. 아까 가사 유치하다고 한 거 진심이야.”

“…진심으로 유치하다고 생각했어?”

“어.”

“…….”

괜히 여자 소개해달라고 했다가 여기저기 뼈만 맞았다. 쉴 새 없이 떠들면서 걸었더니 주차장엔 빨리 도착했지만 말이다.

“시로이, 너 집으로 바로 갈 거야?”

“어.”

“저녁 같이 먹을래? 이따 나올래?”

“됐어. 누나랑 데이트하는 거잖아. 밖에서 좋은 거 먹어라-.”

“어, 들어가-.”

“어. 형도 민지 잘 만나요-.”

“하핫, 희성아, 오늘 민지한테 한 번 물어볼게. 새로운 친구 없나,”

“예예-, 내일 봐, 형-.”

서로 인사를 나누며 각자의 차로 들어갔다. 차에 타서 운전대를 잡고 여기 앉기 전까지 나눴던 대화들을 떠올리면서 잠시 멍하게 앉아있었다. 가벼운 추억담 정도로 지난 이야기를 한 것뿐인데 심바는 왜 진지해져서 사람 기분을 잡치는지…. 내가 여자 소개해달라고 했지, 내 과거 평가해달라고 했나? 기분이 별로다.

심바와 릴라 형 차 뒤꽁무니를 바라보며 계속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나도 곧 시동을 걸었다. 집이나 가야지…. 앨범 녹음이 무사히 끝난 기념으로 한정판 운동화나 살까 했는데 다음으로 미뤘다. 그다음이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당장은 집에서 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졸리다.

“라하-디오나 들어볼까요호-.”

올림픽대로를 지나면서, 자꾸 쏟아지는 하품에 라디오 방송을 켰다. 아까 멍하니 앉아있던 바람에 음악도 없이 출발해버렸다. 그걸 뒤늦게 깨달았다.

- 저는 그녀를 사랑했고, 제 사랑을 보여주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한동안 그녀가 돌아서던 그 모습이 매일 꿈에 나와서 창피하지만 울기도 했습니다.

“미치겠다….”

기분을 띄우고 싶었는데 하필이면 이별 사연이 나오고 있었다. 처음부터 듣진 못했지만 쓸쓸하기 짝이 없는 사연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 그때 동생의 방에서 무심코 들려오던 이 노래에 위로를 받았어요. 제 이야기와 너무 비슷했거든요. 혹시 이별의 아픔을 겪고 계신 분이 있다면 들려주고 싶습니다. ‘시로이’의 ‘질문’ 신청합니다. 네, 닉네임 ‘최보통’님 사연 잘 들었습니다. 이별하셨군요.

“…….”

- 힘드시겠지만 마음을 깨끗이 비워두세요. 그녀가 떠난 빈 공간에 새롭게 들어올 사람을 위해서요. ‘최보통’님의 새로운 사랑을 응원하면서 신청곡 듣고 오겠습니다. ‘시로이’의 ‘질문’입니다.

아-, 오늘 진짜 뭐지? 앨범 녹음도 끝났고, 해방되는 기분에 하루가 행복할 줄 알았는데 웃지 못할 일들만 자꾸 이어지고 있었다.

이 노래는 작년 봄, 자주 가던 카페의 바리스타와 만나다가 대차게 까인 뒤, 상심해있는 나에게 심바가 던져준 노래다.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져서 정신 못 차리고 있으니까, 보다 못한 심바가 일이나 하라고 던져준 노래. 당시의 난 이별과 관련된 것 외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서, 이 아름다운 비트에 처절한 시(詩)를 붙여버렸다. 그리고 이 노랜 내 노래 중에 유일한 사랑 노래가 되었다.

「나는 네게 뭐야 / 말해줄 순 없나 / 너무 쉬운 안녕 / 마음이 찢어져 / 너와 나의 사랑 / 서로 다른 모양 」

조금 부끄럽지만, 나는 내 노래를 즐겨듣는데도 ‘질문’ 만큼은 잘 듣지 않는다. 그때 이 노래가 수록됐던 싱글의 타이틀보다 차트 성적도 좋았고, 부르기 싫은데도 공연 때마다 요청을 받았다. 그게 힘들었다. ‘감성팔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다. 인기와 돈을 가져다줬지만 슬픔만 주는 노래…. 애증이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