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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에이스는 힐링하러 갑니다 11권
mensol 스포츠 장편소설
목차
우승 DNA (2)
보이지 않는 무언가
가까운 미래에
종점과 기점
파란
삼신기
진검승부
누군가를 위해
칠전팔기
에이스는 힐링하러 갑니다
1
우승 DNA (2)
요한의 선제 홈런이 터지며 1-0으로 앞서 나가기 시작한 보스턴.
패럴 감독은 이 6차전에서 시리즈가 끝나길 원하고 있었다.
보스턴이 가장 웃을 수 있는 시나리오는 여기서 낙승을 거둔 뒤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5일의 휴식을 준 요한을 기용하는 것.
다만 이게 너무 희망적인 그림이라는 건 패럴 감독도 알고 있었다.
‘일단 흐름을 봐야겠군.’
1점의 리드를 사수해 보기로 마음먹으며 일찌감치 불펜을 가동한 그였지만 이 경기가 1-0의 승리로 끝날 거라곤 먼지만큼도 생각하진 않았다.
양키스가 아무리 못해도 1점은 추격을 해 올 것이라 여겼다.
중요한 건 그사이에 타선에서 얼마나 더 쐐기점을 얻어 주는가.
그 부분에 기대를 걸고 승부수를 띄운 것이었다.
‘여기서부턴 외줄타기!’
양 팀 모두 한 번만 삐끗하면 그대로 흐름을 내주는 구도.
먼저 변수를 만든 건 보스턴이었다.
4회 초. 선두타자 5번 페드로이아가 중전 안타를 때려 내며 출루를 성공하자 지라디 감독은 빠르게 대처를 했다.
후속 터너-벨린저-시거를 상대하기 위해 사바시아를 대기시킨 것.
여기서 다나카가 터너를 6구 만에 삼진으로 잡아내자 잠시 고민하긴 했으나 이내 마운드에 방문해 다나카를 강판시켰다.
[선발 다나카 마사히로가 4회를 채우지 못하고 내려옵니다…? 너무 이른 시점에 교체를 한 게 아닐까 싶은데요. 지금도 1사 1루로 그렇게까지 위험한 상황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만…….]
[벨린저의 한 방을 의식한 것 같네요. 뭣보다 지금은 불펜 운용을 칼같이 하겠다는 겁니다. 변수를 제거하기 위해 최선의 선택만 하겠다는 거예요.]
물론 투수를 교체하는 것 자체가 변수를 만드는 행위이긴 했다. 교체돼 올라온 투수가 더 잘 던질 거라고는 확신할 수 없으니까.
[다나카를 내린 선택이 정답이었을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긴 합니다.]
그래도 사바시아는 그 기대에 부응했다.
이제는 1선발에서 밀려나 이번 포스트시즌엔 불펜으로까지 밀려난 사바시아였지만 그 관록은 어디 가질 않았다.
벨린저를 5구 만에 삼진으로 잡아낸 사바시아는 그에 더해 경기의 흐름을 흔들 수 있는 키 플레이를 선보였다.
그것은 시거와의 승부를 1-2의 카운트로 몰아넣은 상태에서 나왔다.
투수에게 유리한 카운트. 유인구 카운트였던 이 상황에서 1루 주자 페드로이아가 스타트를 끊었던 것.
그러나 배터리는 그걸 읽었다는 듯 피치아웃을 하더니 페드로이아를 2루에서 잡아냈다.
[태그, 아웃입니다! 페드로이아의 도루 실패로 이닝이 종료됩니다.]
[이건 많이 아쉬운데요? 이러면 사바시아가 다음 이닝에도 계속 마운드에 설 가능성이 높아지거든요.]
본래는 1번 베츠, 2번 보가츠를 의식해 내려갔어야 할 사바시아였지만 페드로이아가 도루 실패를 하며 좌타자 시거가 그대로 남아 버리면서 상황이 묘해진 것.
그리고 이어진 4회 말 양키스의 공격.
보스턴은 루이스 서베리노를 롱 릴리프로 투입해 양키스의 타선을 막아 보려 했으나 1사 이후 안타와 볼넷이 나오며 1사 1, 2루의 위기를 맞자 그 카드를 일찌감치 꺼내 들었다.
[저스틴 벌랜더가 셋업맨으로 마운드에 올라오네요!]
[보스턴은 여기서 시리즈를 끝내 보겠다는 거죠. 여기서 끝내면 뒤가 편해지니까요.]
총력전의 의지를 드러내는 보스턴.
그렇게 벌랜더가 등판해 카를로스 벨트란을 상대하게 되자 양키스도 가만있지 않았다.
[여기서 대타가 나옵니다!]
스즈키 이치로를 대타로 내보내는 양키스.
이치로의 경우 발이 워낙 빨라 병살의 위험이 적다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양키스가 일찌감치 대타 카드를 쓰는군요.]
[보통 대타를 함부로 쓸 수 없는 건 수비 때문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치로는 부담 없이 사용하기 좋은 대타 자원이긴 합니다. 이러면 브렛 가드너가 좌익수로 가고, 이치로가 우익수로 가겠네요.]
벌랜더와 이치로의 승부.
여기서 보스턴은 이치로가 벌랜더를 상대로 장타를 때릴 확률은 거의 없다고 판단하고 외야 전진 수비를 걸었다.
그리고 2-1의 카운트에서 4구째.
딱! 이치로는 복판에 들어온 98마일짜리 포심을 때려 내 중전 안타를 뽑아냈다.
[잘 맞았습니다!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공! 하지만 2루 주자는 3루에서 멈춰 섭니다.]
[전진 수비이긴 해도 돌려 볼 법한 상황처럼 보였는데요. 1사 상황이니 무리를 하지 않네요.]
[예, 이제는 희생 플라이의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마운드에는 여전히 저스틴 벌랜더! 타석에는 8번 브록 홀트입니다.]
여기서 보스턴은 정상 수비를 하지 않았다.
[3루수와 1루수가 두 발자국 정도 전진해 있습니다. 이건 스퀴즈를 의식한 걸까요?]
[벌랜더가 우완이니만큼 투수가 의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3루 주자가 스퀴즈 스타트를 끊기는 어렵습니다. 이건 정석적인 스퀴즈보단 기습 번트를 의식한 것 같아요.]
1점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피력.
여기서 벌랜더가 공격적인 피칭으로 투 스트라이크를 잡아내자 그제야 정상 수비로 돌아갔다.
타자는 4구째 체인지업에 헛스윙. 삼진으로 두 번째 아웃 카운트가 잡혔다.
[이제 타석에는 9번 브랜든 라이언이 들어오겠습니다. 대타는 쓰지 않습니다.]
[조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대타를 사용할 땐 수비도 감안을 해야 합니다. 유격수 브랜든 라이언은 그런 의미에서 빼기 어려워요.]
이 승부에서 벌랜더가 중견수 뜬공을 유도해 내며 스리 아웃. 양키스는 만루의 찬스를 살리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숨 가쁘게 이어지는 5회 초.
사바시아가 과거의 영광을 되살렸다.
시거를 삼진으로 잡아낸 그가 해니건을 뜬공. 베츠를 땅볼로 처리하며 삼자범퇴를 만들곤 6회 초까지 노려보기 시작한 것이다.
[사바시아가 오늘 좋습니다. 이러면 상황이 묘해지네요.]
선발 자원을 롱 릴리프로 썼을 때의 이점이었다. 만약 그 선수가 좋은 폼을 보여 주면 일반적인 롱 릴리프보다 더 길게 끌고 갈 수 있다는 점.
이는 벌랜더도 마찬가지이긴 했으나 양키스는 그 꼴을 두고 보지 않았다.
1번부터 시작되는 5회 말 공격에서 애런 저지가 선두타자 2루타를 치고 출루하자 보스턴의 불펜이 바쁘게 움직였다.
다음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타석이 핵심이었는데, 여기서 맞는다면 양키스에게 흐름을 완전히 내줄 수도 있었다.
그 승부에서 벌랜더는 풀 카운트 승부 끝에 떨어지는 공으로 삼진을 수확. 크게 한숨을 돌렸다.
[귀중한 아웃입니다. 이러면 아레나도를 고의사구로 보낼 수가 있거든요.]
[예, 고의사구가 나옵니다. 이제 1사 1, 2루! 타석엔 전설적인 스위치히터. 마크 테세이라입니다.]
보스턴은 여기서 좌완 로비 레이를 투입하여 테세이라를 우타석에 서게 한 뒤 2루수를 왼쪽으로 당기며 우타 시프트를 걸어 버렸다.
[이건 어떤 의미일까요?]
[데이터겠죠. 테세이라가 이번 시리즈 좌타석에서 뜨겁기도 하고…. 이렇게 우타 시프트를 걸면 땅볼 타구가 나왔을 때 병살을 잡기도 쉽거든요.]
그 예상대로 1-1의 카운트에서 3구째.
테세이라가 잡아당긴 타구가 3루수 터너의 정면으로 굴러갔다.
우타 시프트 덕에 3루 베이스 근처에 붙어서 수비를 하고 있던 터너는 본래라면 빠져나가 페어가 됐을 타구를 잡아채 3루 베이스를 밟은 뒤 1루로 송구.
병살로 이닝을 종료시켰다.
[5-3의 병살입니다. 보스턴의 노림수가 적중하면서 5회 말이 종료됩니다. 6회 초로 돌아오겠습니다!]
꿀꺽! 지라디 감독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건너편 더그아웃의 패럴 감독을 가라앉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오늘 시리즈를 끝내 보려는 생각이군. 벌랜더와 레이를 이 시점에 냈다는 건 투수는 이요한을 제외하면 전부 사용하겠다는 건가…….’
어쩌면 요한까지 사용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판단한 지라디 감독은 시간이 촉박함을 느꼈다.
‘보스턴은 8회가 되면 필사적으로 걸어 잠그겠지.’
말할 것도 없이 벌떼야구가 시작된다.
양키스로선 그나마 보스턴이 투수 기용을 선 굵게 하고 있는 6회와 7회에 득점을 내야 했다.
‘…아니야, 초조해하지 말자. 지금은 타자들의 기량을 믿고 멀리 봐야 돼.’
승리에 대한 선수들의 갈망과 투지는 충분했다.
그걸 사바시아가 보여 줬다.
사바시아는 2, 3, 4번으로 시작되는 6회 초 공격도 전성기가 떠오르는 역투로 막아 냈다.
2번 보가츠를 땅볼로 유도해 요리를 해내고는 3번 요한도 슬라이더만 4개를 던지며 좌완의 악몽을 선사해 삼진으로 잡아낸 것.
-우와아아아아!!
요한이 삼진으로 잡히자 양키스의 홈 팬들이 함성을 내질렀을 정도.
이후 4번 슈와버까지 삼진으로 잡아낸 사바시아는 짐승 같은 포효를 내질렀다.
“컴 오오오온!”
2와 2/3이닝 퍼펙트.
이 사바시아의 뜬금없는 역투에는 패럴 감독도 당혹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희망적인 계획대로라면 여기서 1점이나 2점은 나와 줬어야 했기 때문.
‘큰일이군…….’
그는 경기의 흐름이 양키스에게 기울고 있음을 느꼈다.
그런 6회 말.
땅! 선두타자 브라이언 매캔이 좌전 안타를 때려 내며 1루에 출루.
이후 6번 좌타 브렛 가드너를 상대로 좌완인 로비 레이를 그대로 냈지만 가드너는 희생번트를 잘 갖다 대며 1사 2루 상황을 만들었다.
타석엔 대타로 나왔었던 이치로.
“으음……!”
이치로도 좌타인 만큼 패럴 감독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 장타력은 없는 유형이니까.’
외야 전진 수비를 걸고 승부를 거는 보스턴.
여기서 이치로가 3-유간을 뚫어 내는 안타를 때려 내면서 1사 1, 3루가 만들어졌다.
[이치로 멀티 히트! 오늘 경기 키 플레이어는 그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주자는 들어오지 못했어요. 이게 컨택 타자의 한계이긴 합니다.]
안타를 때려 내긴 했지만 상황이 괄목할 정도로 바뀌진 않았다.
희생 플라이 가능성이 생긴 건 좋지만 그에 더불어 병살 위험도 생겼기 때문.
그런 만큼 양키스 입장에선 이치로의 도루 능력에 기대를 걸었다.
마운드에는 여전히 로비 레이. 타석엔 좌타 브록 홀트가 선 가운데 탓! 이치로가 초구 도루를 시도했다.
이때 브라이언 매캔은 2루 송구 시 홈으로 쇄도할 심산으로 리드 폭을 넓혔지만 그게 독이 됐다.
텁! 상체를 숙이고 있던 레이는 매캔의 리드 폭이 과한 걸 보고 몸을 고쳐 세우며 득달같이 송구를 커트.
휙! 곧장 3루로 송구를 뿌렸다.
스륵! 탓! 귀루하는 매캔과 태그하는 터너.
3루심은 주먹을 내질렀다.
[태그…! 아웃입니다! 브라이언 매캔이 통한의 판단을 했습니다!]
[이건 레이가 정말 잘했네요. 매캔이 속을 만 했어요.]
좌완인 레이는 투구 도중에 곁눈질로 이치로가 뛰었다는 걸 감지했다. 그러니 투구 직후 재빨리 상체를 숙였고, 매캔은 이를 보고 커트 의지가 없다고 지레 판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