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간수가 되었다 02권
소설 속 간수가 되었다 02권
소설 속 간수가 되었다
02
지인
소설 속 간수가 되었다 02권
차례
제6장.
제7장.
제8장.
제9장.
제10장.
소설 속 간수가 되었다 02권
제6장.
“문상원 추관이네.”
그사이에 문상원이 성큼성큼 다가와서 지양천에게 더 많은 말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일단은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무슨 일이오?”
내가 먼저 묻자 문상원이 이상하다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시신의 주위에 서 있던 옥졸들을 희한하다는 눈으로 보았다.
“안찰사님이 이곳에 오셨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 해서 왔습니다.”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이 자는 황선공과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을듯했다.
“서효상이 이자를 죽였다고 하기에 알아보려는 거요. 황 대인이 나에게 이 일의 처리를 부탁하셨으니 어찌 된 일인지 확인은 해봐야 하지 않겠소?”
“그렇다고 뭘 이런 것까지 직접 보시려 하는지요? 안찰사님은 앉은 자리에서 보고만 듣고도 판결을 내리실 수 있는 분이 아닌지요? 그동안에도 그렇게 일을 처리해오셨고 말입니다.”
“그래도 이번 일은 사안이 중대하니 정확히 알아보려 했소. 그래야 하지 않겠소? 사람들이 어찌 생각하겠소? 산서성에 사는 사람 중에 황 대인과 내가 가까운 사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소? 그런데 황 대인의 상단에서 소금을 싣고 가다가 검문에 걸렸고, 그걸 적발한 포졸이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갇혔소. 얄궂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겠소? 왜 하필 지금 서효상이 사람을 죽였다는 건가 하고 의심하는 자들도 있을 거요.”
“누가 감히 그런다는 말입니까? 안찰사 어른의 판결에 왈가왈부할 자는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그러니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시지요. 아무 걱정 하실 것 없습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안찰사 어른께 올라가는 보고를 토대로 결정을 내리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 말은 더 이상 쓸데없이 들쑤시고 다니지 말라는 경고처럼 느껴졌다.
그자는 추관이고 나는 안찰사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만 그 사이에 황선공이 끼면 말이 달라질 수도 있을 듯했다.
황선공이 내 목줄을 잡고 있다면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문상원이 나를 보면서도 크게 긴장하는 얼굴이 아닌 것을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듯했다.
“내가 황 대인을 난처하게 만들까 봐 걱정이 되는 것이오? 우리는 다 같은 배에 탔는데 내가 왜 그런 짓을 하겠소? 우리가 함께 있는 모습이 다른 사람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것은 없으니 이만 가보도록 하시오.”
문상원이 진이한과 어떤 식으로 관련이 돼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 자리에 온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 가는 것이 있었다.
“안찰사 어른, 바른 판단을 내리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저는 안찰사 어른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안찰사 어른이 평탄한 길을 갔으면 합니다. 그렇게만 하면 안찰사 어른은 쉽게 아주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안찰사 어른이 그렇게 길을 닦아놓으시고 저희에게 손을 내밀어 주실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나는 그가 그런 말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어떤 것도 개의치 않는 듯 말했다.
“나는 할 말을 다 했소. 더 이상 다른 말이 더 필요하오?”
그러자 문상원이 잠시 나를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이고 그 자리를 떠났다. 처음에는 그가 나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문상원이 혼자 웃음을 짓는 것이 보였다.
어디 한번 잘 해보라는 조롱 섞인 웃음이 아니라, 맡은 일을 잘 해냈다는 것 같은 웃음이었다.
나를 설득하지 못한 채 쫓겨나듯 나가는 거면서 그런 웃음을 짓는다는 것이 이상했다.
‘모든 게 다 계획된 거였을까? 자기가 막으려고 하는 것처럼 굴면 내가 더 열심히 살필 거라고 생각한 건가?’
그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더 커졌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내가 나무에 집중하느라 숲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진실에서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는 미로 같았다.
출제자의 의도를 먼저 파악하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문제. 황선공이 왜 이 일을 벌였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거기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듯했다.
누가 했는지, 어떻게 죽은 건지를 밝히는 것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왜 그러나, 이수?”
사람들도 내가 자꾸 다른 생각에 빠지는 것을 알아차린 듯했고 결국 유소백이 물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내가 생각한 것을 말하자 모두 고개를 서서히 끄덕였다.
“이 일에 집중하게 하고 뒤에서 이수를 노리려는 걸 수도 있겠군. 이수를 의심하고 있는지도 몰라. 그래서 이수를 관찰하기 위해서 일을 벌인 걸 수도 있겠어.”
지양천의 말을 들으니 그거야말로 가능성이 있을 듯했다.
진이한의 역을 하기 전에는 그의 자리를 차지할 수만 있다면 억울한 일도 당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도와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진이한의 역할을 하면서 보니 그 역시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만약 내가 황선공이 놓은 덫에 빠지면 그들은 더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될 터였다.
“황 대인이 일부러 떨어뜨린 부스러기를 보면서 따라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걸 주목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돌아가시죠.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내 말이 다 이해되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다들 나를 따라왔다.
“기분은 좋군. 이런 기분이 든 건 오랜만이야. 나는 옥졸 일이 그럭저럭 좋았는데 한동안 너무 편하게 지내서 그런 건지 요즘은 힘이 들더라고. 인간 같지도 않은 자들이랑 매일 입씨름을 하고 그놈들에게 욕설이며 저주를 듣는 것도 싫고.”
그 말을 한 사람은 백웅이었다. 백웅은 말을 하면서 나를 힐끔거렸다. 하고 싶은 말이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았다.
혹시 내가 적극적으로 제의해주기를 바라는 건가 해서 내가 먼저 말했다.
“저를 위해서 일해주시겠습니까, 선배님들?”
그러자 모두 반색을 하며 나를 보았다.
“그렇지? 아무래도 믿을 사람은 우리뿐인 거지? 그래. 그렇게 하는 게 좋은 것 같아.”
지양천이 신이 나서 말했지만 유소백은 걱정되는 게 있는 듯 보였다.
“이수를 돕는 것은 좋지만 우리가 자격을 갖추지 못해서 그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는데…. 이수가 한 일 때문에 이수에게 반감을 가진 사람이 점점 늘어나지 않을까? 게다가 앞으로는 더 많은 일을 할 거지 않나? 황 대인을 적으로 돌리는 순간 이수가 하는 일에 꼬투리 잡으려는 사람도 많을 텐데.”
유소백의 말을 듣고 다른 사람들도 시무룩해졌다.
자기들이 생각해도 그 말이 맞을 것 같은 모양이었다.
“상관없습니다. 특별채용의 형식으로 하면 되니까요. 제가 안찰사라는 걸 잊지 마십시오. 저에게는 많은 권한이 있습니다. 게다가 제가 실적을 많이 내고 있어서 꼬투리 잡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수많은 관병들이 나서고도 잡지 못했던 흑살방을 토벌한 것만으로도 더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이루어낸 실적으로 혜택을 요구한 적은 없었지만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 내 옆자리를 채우는 것만큼은 해내고 싶었다.
“뭐, 우리가 지금까지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정말 능력이 없었던 거겠어? 이수에게 폐 끼치지 않게 잘하면 되는 거야.”
백웅이 먼저 말하자 다른 사람들도 그 말이 맞다며 기운을 냈다.
이제는 다른 방향에서 일을 풀어나갈 때였다.
* * *
지천의 팔층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술을 마시는 황선공에게 사람이 들어왔다. 황선공은 자신의 옆에서 술을 따라주던 루주를 손짓으로 쫓아냈다.
마치 파리를 쫓는 것 같은 손짓에 모멸감이 들 법도 했지만 감히 황선공에게 싫은 기색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어찌 됐느냐.”
방에 들어온 이는 몸을 앞으로 구부정하게 숙이고 있는 흑의노인으로 황선공의 측근 중 한 사람이었다.
“안찰사가 서효상을 의방에 데려다주고 호위무사를 거기에 두고 시신 보관소로 갔다 합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사건을 제대로 파헤치려고 하는 듯하더니 갑자기 그냥 돌아갔다 합니다. 문 추관이 전해온 소식입니다.”
“서효상이 누구냐.”
“상단마차를 검문한 포졸입니다.”
“그놈은 어찌했어. 의방 놈들까지 전부 싸그리 죽여버리라고 했을 텐데 그 일은 왜 보고하지 않지?”
그것을 물으면서도 황선공은 실패했다는 말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그 이야기를 자세히 들으면 기분이 풀릴 것 같아서 물어본 것뿐이었다.
그런데 흑의노인이 굳은 얼굴을 하고 말을 더듬거렸다.
“그, 그것이….”
흑의노인은 황선공의 표정이 험상궂게 변하는 것을 보고 급히 말을 이었다.
“그곳에 보낸 이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돌아오지 않았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황선공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그를 보았다.
“죄송합니다, 장주님.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아오도록 사람을 새로 보냈으니 곧 소식이 돌아올 것입니다.”
그러고 있을 때 복도가 소란스럽더니 루주가 들어왔다. 그러고는 한 사람이 장주님을 급히 뵙기를 청한다는 말을 전했다.
“들어오게 하거라!”
그러자 안으로 들어온 이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흑의노인이 의방에 보낸 수하인 듯했다.
“의방에 갔던 사람들이 의방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죽어 있었습니다. 무림 고수의 소행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신묘한 솜씨였습니다.”
“그자들이 어찌 당할 수가 있다는 것이냐. 의방에 누가 있어 그런 짓을 할 수 있다는 것이냐! 설마하니 안찰사의 호위무사가 혼자서 벌인 짓은 아닐 터!”
“그것까지는 알아보지 못하고 급히 돌아왔습니다. 이 소식을 먼저 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수하는 황선공이 어찌 나올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감히 그를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황선공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일을 망칠 사람들을 밑에 두지 않았다. 돈을 아낄 필요가 없었기에 최고를 선택했다. 그런 이가 혼자만 간 것도 아니고 여럿이 갔는데 모두 죽었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했다.
그러나 그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밖에서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게 하라!”
황선공이 분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소리치자 밖에 있던 이가 그 소리를 듣고 들어왔다.
“장주님, 큰일 났습니다!”
* * *
“무슨 일인데 그러는 것이냐!”
황선공의 수하가 재촉하자 새로 들어온 이가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
“소금을 실은 상단마차가 관병들에게 발각되었다 합니다. 평소에 현령이 포두와 포졸들을 데리고 나와서 통행 허가증 검사를 핑계로 돈을 챙겨오던 곳이었는데 그곳에 안찰사가 나타났다 합니다.”
황선공은 기가 막혀서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어찌 됐다는 것이냐!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냐!”
그는 그때까지도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싶었다.
상단마차에 소금이 실려있다는 것을 봤다고 해도 평소에 진이한과 관계를 잘 쌓아놨으니 문제 삼지 않고 그냥 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 했다. 그러나 만약 일이 그렇게 진행됐다면 여기에 나타나서 이렇게 소란을 부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안찰사가 상단마차에 실려있는 것을 전부 압수하고 상단 사람들을 전부 데려가 가두었다고 합니다.”
황선공은 하루 이틀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사람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올라오는 것이 쉽지도 않았고 지키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그가 가진 것을 부러워하는 사람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어떤 이들은 적극적으로 그것을 뺏고 싶어 했다. 황선공은 그들에게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그 순발력이 지금도 발휘되었다. 그의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갔다.
“포졸 놈이 간 의방이 어디라고 했느냐.”
“…예?”
흑의노인은 황선공이 자기에게 물은 거라는 것도 곧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뒤늦게 알아차리고 서둘러 설명했다.
그러나 어차피 황선공은 그 자세한 위치를 알려고 물은 것이 아니었다. 자기가 그것을 알 필요는 없었으리라.
“그곳에 사람을 보내거라. 진이한이 싸움을 걸었으면 나도 싸움에 응해줘야겠지. 갑자기 그놈이 왜 선량한 척하려고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제놈이 무슨 일을 초래했는지 알게 하면 되지 않겠느냐?”
흑의노인은 그제야 황선공의 뜻을 헤아렸다.
“의방 의원과 가솔들을 잡아가두면 되겠는지요? 의원은 본보기로 죽이라 하는 게 좋겠는지요?”
“죽이라 하거라. 잡아가두면 그자들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진이한이 어찌 알겠느냐? 그곳에 사람을 보내놨으니 소식을 듣겠지. 어쩌면 직접 다시 찾아갈지도 모르고. 그때 그 모습을 보게 하면 좋지 않겠느냐? 제가 포졸을 데려간 것으로 인해서 의방 하나가 풍비박산이 난 것을 보면 어떻겠느냐.”
흑의노인의 얼굴에도 웃음이 지어졌다.
“그러면 정신이 들겠습니다. 제대로 정신을 차리겠지요. 곧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이번에는 실수가 없어야 한다. 그곳에서 당했다는 보고를 다시 한다면 그때는 네놈의 목을 잘라버릴 것이다!”
“예, 장주님.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흑의노인은 가장 실력이 좋은 사람들로 여럿을 추려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방을 나선 흑의노인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들을 모아 의방으로 가게 했다.
“의방에 있는 자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죽이라고 하여라. 죽이고 그놈들의 시신을 의방 현판 있는 곳에 걸어서 전시를 해놓으라고 하거라.”
조금만 지나면 진이한은 스스로 깨닫게 될 터였다.
자기가 얼마나 멍청한 짓을 했는지.
* * *
갑자기 내가 관병들을 데리고 나타났을 때 황선공의 상단마차를 끌고 가던 이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러나 확실히 황선공의 권세를 등에 업어서 그런 건지, 나를 보고도 아주 겁을 먹은 얼굴은 아니었다.
나는 그곳의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처리하게 하고 곧장 설마를 타고 그곳을 떠났다.
어차피 그곳에서 할 일은 내가 아니라도 할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필요한 것은 내 권위와 권한이었고 그것은 다른 이에게 맡겨도 되는 일이었다.
나는 황선공을 향해서 전쟁을 선포한 거나 마찬가지였고 황선공이 나에게 당한 채 가만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황선공이 지금의 나에게서 약점이라고 찾아낼 만한 사람이 누구일지, 그리고 어디를 공격하려고 할지 눈에 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