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정보가 다 보임 04권
투자 정보가 다 보임 04권
투자 정보가 다 보임
04
가좌
투자 정보가 다 보임 04권
차례
Chapter 01.
Chapter 02.
Chapter 03.
Chapter 04.
Chapter 05.
투자 정보가 다 보임 04권
Chapter 01.
“그러니까 손 사장님. 제 말을 잘 알아들으셨으리라 믿겠습니다. 그 알량한 사장 자리라도 계속 지키고 싶다면, 이제부터 제가 시키는 대로만 하시라는 겁니다. 괜히 이런 같잖은 결재 서류 따위나 들이밀면서 아버지에게 어필하실 생각하지 마시고요.”
안종훈 부회장은 경멸 어린 시선으로 손재일을 쏘아붙이며 최후통첩을 날렸다.
그는 더 이상 볼일 없다는 듯, 손짓으로 손재일 사장을 사무실 밖으로 쫓아냈다.
그의 얼굴에는 오만함과 권력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저 고리타분한 늙은이도 슬슬 목을 쳐낼 때가 되었는데…….’
닫힌 문을 바라보며 안종훈 부회장은 속으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손재일 사장은 누가 뭐래도 철저한 안정우 회장의 사람이었다.
그의 충성심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EV 그룹 내에는 손재일처럼 안정우 회장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는 올드보이들이 아직 상당수 남아있었다.
그들은 안종훈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안종훈 자신이 그룹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자신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시대의 잔재들을 청산해야만 했다.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세대교체.
그 과정에서 피바람이 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그 숙청의 첫 번째 대상은, 아마도 오늘 자신에게 밉보인 손재일 사장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 * *
나를 둘러싼 시끄러운 헤프닝과는 별개로, KA―9 자주포 개량 연구는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각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연구원들이 한자리에 모이니, 연구 개발 속도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다.
그들의 시너지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RP 디펜스에서 개발한 초기 개선 모델의 성능을 직접 확인하는 시연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RP 디펜스 연구소가 위치한 대전으로 향했다.
소위 대전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첨단 연구단지.
그곳에는 수많은 기업들의 연구소들이 밀집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RP 디펜스의 연구소는 단연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했다.
“회장님, 어서 오십시오!”
연구소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정태영 사장이 반갑게 맞이하며 허리를 숙였다.
그의 얼굴에는 시연회에 대한 기대감과 약간의 긴장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개량 연구를 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회장님. 염려 마십시오. 이쪽으로 오시지요. 특별히 좋은 자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정태영 사장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안내했다.
그가 안내한 곳은 시연 장비가 가장 잘 보이는 정중앙의 VIP 좌석이었다.
내 자리 양옆으로는 이번 개량 연구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한 협력사 대표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도 기대감이 가득했다.
뉴로메카 테크의 윤도훈 사장, 한빛 정밀의 오정석 사장, 아이언택 시스템즈의 조수민 사장까지.
핵심 협력사의 대표들이 모두 참석한 것을 보니, 이번 시연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서로의 노고를 치하했다.
잠시 후, 주요 연구진들까지 자리에 착석하자 마침내 역사적인 시연회가 시작되었다.
장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곧이어 육중한 위용을 자랑하는 KA―9 자주포가 시연장 중앙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는 기존 모델과 크게 달라진 점이 눈에 띄지 않았다.
“KA―9 자주포의 외형은, 기존 모델의 디자인을 최대한 유지하는 방향으로 개량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외형 변경으로 인한 추가 비용 발생과 야전 운용상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옆에 있던 정태영 사장이 타이밍 좋게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그의 설명은 합리적이었다.
이윽고 자주포는 정해진 위치에 멈춰 서서, 마치 인사를 하듯 우리 쪽을 향해 후면부를 드러냈다.
아직 탄약 적재함의 해치가 닫혀 있어서 내부 구조를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잠시 후, 준비가 완료되었는지 자주포의 육중한 후면 해치가 끼익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드디어 개량된 내부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내부는 예상대로 기존 모델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다.
공간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많은 부분이 변경되고 재배치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기존 탑승 인원 좌석 중 일부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자동 탄약 적재 시스템이 설치되었다는 점이었다.
제한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길게 뻗은 포신 아래쪽에는, 마치 거대한 집게발처럼 생긴 로봇 팔 하나가 새롭게 장착되어 있었다.
저것이 바로 자동 탄약 장전 시스템의 핵심 부품일 터였다.
그 외에도 내부 곳곳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최첨단 전자 장비들이 빼곡하게 부착되어, 마치 미래형 전투 병기의 조종석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번 KA―9 자주포 개량 사업의 핵심은 바로 무인 자동화 시스템 탑재입니다. 기존 수동 방식이었던 조준 및 탄약 장전 시스템을 완전 자동화하였고, 발사 역시 원격 제어가 가능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이를 통해 운용 인력을 최소화하고 전투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다만, 내부 공간의 한계로 자동 적재 가능한 고폭탄의 수는 최대 10발로 제한되었습니다. 부족한 적재량은 별도의 외부 탄약 적재 공간을 마련하고, 필요시 탑승 인원이 수동으로 보충하는 방식으로 보완했습니다.”
정태영 사장이 개량 모델의 주요 특징들을 막힘없이 설명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넘쳤다.
확실히 제한된 내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려다 보니, 자동화 시스템과 수동 시스템이 다소 복잡하게 얽혀있는 듯한 인상을 주긴 했다.
하지만 전투력 향상과 운용 효율성 증대라는 목표를 고려하면 충분히 감수할 만한 수준이라고 판단되었다.
오히려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 최적의 결과물을 만들어낸 연구진들의 노력이 돋보였다.
“지금부터 자동 탄약 장전 시스템 시연을 시작하겠습니다.”
정태영 사장의 말과 함께, 본격적인 성능 시연이 시작되었다.
이어지는 시연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매끄럽고 안정적으로 진행되었다.
연구진들의 오랜 노력과 땀방울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거대한 로봇 팔이 정교하게 움직여 포신 덮개를 열고, 육중한 고폭탄을 정확하게 집어 들어 포신 안쪽으로 부드럽게 밀어 넣었다.
마치 숙련된 포병이 직접 장전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탄약 장전이 완료되자 로봇 팔은 다시 포신 덮개를 완벽하게 닫았고, 시스템은 즉시 발사 준비 완료 신호를 보냈다.
동시에 조종석의 디지털 상황판에는 현재 장전된 탄종과 발사 준비 상태 등 관련 정보가 실시간으로 표시되었다.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고폭탄의 무게가 상당하기 때문에, 로봇 팔의 크기와 출력을 불가피하게 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디자인적인 측면에서는 다소 투박해 보일 수 있겠습니다만…….”
뉴로메카 테크의 윤도훈 사장이 로봇 팔 설계에 대한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그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확실히 로봇 팔의 크기는 일반적인 산업용 로봇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했다.
마치 거인의 손처럼 투박했지만, 그만큼 강력한 힘과 정밀함을 갖추고 있을 터였다. 디자인보다는 성능과 안정성이 우선시되어야 하는 군사 장비의 특성을 고려하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마침내 모든 시연 과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자, 현장에 있던 연구진들 사이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얼굴에는 오랜 노력 끝에 얻은 값진 성취감과 자부심이 가득했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 * *
“어라? 이게… 진짜 되네?”
방위사업청 기동전력개발과 박준석 과장은 책상 위에 놓인 RP 디펜스의 KA―9 자주포 개선 사업 최종 보고서와 함께 첨부된 시연 영상을 보고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믿기지 않는 결과물에 그는 입을 떡 벌렸다.
솔직히 말해서, 그는 처음 위에서 KA―9 자주포 개선 사업을 추진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을 때부터 시큰둥했다.
개선 사업이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 들어가는 공력에 비해 실속은 없는,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사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으리으리한 신무기 개발 사업이라면 모를까, 이미 운용 중인 무기를 찔끔찔끔 뜯어고치는 개선 사업은 그다지 돈이 되지 않았다.
업계에서도 기피하는 사업 중 하나였다.
실제로 KA―9 자주포를 최초로 개발하고 현재까지 독점 납품해 온 EV 에어로 스페이스조차 이번 개선 사업에는 영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가.
그들은 아예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
그런데 RP 디펜스라에서 덜컥 개선이 가능하다며 자신만만하게 사업 보고서를 들이밀다니.
이건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냄새가 나는데. 이거 필시 위쪽이랑 미리 이야기가 다 된 거 아니야?’
박준석 과장은 예리한 촉으로 무언가 석연치 않음을 감지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기가 막힌 타이밍에 보고서가 제출될 리가 없었다.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 같다고나 할까.
국방부에서 개선 사업 추진 검토 지시가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렇게 완벽하게 준비된 개선 보고서가 떡하니 제출되다니.
이건 정상적인 속도가 아니었다.
혹시나 해서 형식적으로 EV 에어로 스페이스 측에도 의견을 물어봤지만, 그들은 여전히 기술적 한계와 사업성 부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며 개선 연구가 어렵다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했을 뿐이었다.
그들의 반응은 너무나 예상 가능했다.
당연히 박준석 과장은 이번 개선 사업도 별다른 성과 없이 흐지부지되거나, 최악의 경우 사업 자체가 백지화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어? 저 로봇 팔… 어디서 많이 본 기술 같은데요?”
마침 옆을 지나던 이정우 과장이 박준석 과장의 모니터에 재생되고 있는 시연 동영상을 우연히 보고는 아는 척을 했다.
특히 영상 속 거대한 로봇 암에 그의 시선이 꽂혔다.
“어? 이 과장님, 혹시 RP 디펜스라는 회사에 대해 좀 아시는 게 있으십니까?”
박준석 과장이 반색하며 물었다.
“RP 디펜스요? 아뇨, 제가 말씀드린 건 뉴로메카 테크라는 회사입니다.”
이정우 과장은 고개를 저었다.
“뉴로메카 테크요?”
박준석 과장은 되물었다.
“네, 맞습니다. 뉴로메카 테크가 원래 산업용 로봇 암 제작 분야에서는 국내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강소기업이거든요. 최근에 그 회사와 기술 협력 건으로 자주 만나다 보니 저 로봇 암 디자인이 눈에 익어서요.”
이정우 과장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흠… 그렇다면 뉴로메카 테크와 RP 디펜스가 이번 사업에서 협력 관계를 맺은 것일 수도 있겠군요. 잠시만요, 보고서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박준석 과장은 뭔가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다시 한번 사업 보고서를 꼼꼼히 훑어보았고, 마침내 로봇 암 제작 관련 기술 협력 파트에 뉴로메카 테크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예상이 정확히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보고서에는 기술 협력 업체로 아이언택 시스템즈와 한빛 정밀의 이름까지 버젓이 적혀 있었다.
이 두 회사의 이름을 확인한 박준석 과장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아이언택 시스템즈라면 얼마 전 국방부 차세대 군용 드론 개발 사업자로 선정된 바로 그 회사 아닙니까? 게다가 한빛 정밀은 또 어떻고요! 도대체 RP 디펜스에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이렇게 쟁쟁한 기술 기업들과 단기간에 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걸까요?”
박준석 과장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일단 RP 디펜스 담당자를 직접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그 회사들, 저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곳들입니다. 각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그야말로 알짜배기 강소기업들이죠. 그런 회사들이 한데 뭉쳤다면…….”
이정우 과장 역시 사태의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진지한 표정으로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