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폐급 파티 04권
친애하는 나의 폐급 파티 04권
친애하는 나의 폐급 파티
04
절충이
친애하는 나의 폐급 파티 04권
차례
Chapter 01. 토굴 - 2
Chapter 02. 치킨 게임
Chapter 03. 소식
Chapter 04. 잠입
Chapter 05. 결투
Chapter 06. 재판 - 1
친애하는 나의 폐급 파티 04권
Chapter 01. 토굴 - 2
나와 나디는 탐험가들이 떠나는 걸 보면서도 왕자의 군영을 떠나지 않았다.
“…꺼림칙해.”
나디가 떠나가는 탐험가들을 보며 한 말이었다. 그녀의 말에 나도 다시 한번 탐험가들을 살폈지만, 특이 사항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어쨌든 그녀는 내 의견을 전적으로 따라준다고 해줬고, 나는 결정을 내렸다.
‘굳이 위험을 무릎 쓸 필요는 없겠지.’
지금 밖에서는 내게 원한이 가득한 켄타우로스가 두 마리나 돌아다니고 있다.
‘그것도 필드 보스를 잡으러 갈 때, 수문장 겸 중간 보스 역할을 할 법한 놈들이지.’
반쯤 부서진 게 아니라 멀쩡한 루트 가드의 갑옷을 입으며, 스탯까지 업그레이드된 놈들이다.
아까 전처럼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전투할 필요가 없는 놈들.
내가 뭐 하러 그래, 일방적으로 뚜드려 팰 수 있는 상황도 아닌데.
‘뭐, 딱히 못 이길 것 같지는 않지만.’
치이이익.
탐험가들이 군영 안에서 지내던 공터에서 나는 항아리를 제작하고 있다.
조금 전 탐험가들이 군영을 떠나기 전에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우리 동료 삼인방의 소식을 아는 탐험가를 수소문했다.
하는 김에 사비로, 재료로 쓸만한 물건들도 구입했다.
여유가 생긴 김에 살펴본 결과, 항아리들끼리 합성할 항아리도 부족했다.
칙머들한테 ‘화염 폭발 항아리’ 10개는 너무 많이 줬나? 5개만 줄 걸 그랬다.
후우우웅.
그런 나를 나디가 옆에서 도와주고 있다. 교회에서 가주에게 정보 사용료로 받았던 금화 5개로 제작한 항아리에 나디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것들을 쓰면 걔네가 와도 무서울 게 없지.’
“여기에 쭈그려 앉아서 뭐 하는가? …항아리를 많이도 만들었군.”
나를 찾아온 건 빌헬름이었다. 서로 첫 만남이 좋은 사이도 아닌데, 왜 이렇게 친한 척을 하는 거야?
‘설마 얘도 타이산 같은 부류인가? 싸우고 나면 사나이의 우정이 싹튼다! 열정! 우정! 이런 거?’
사나이의 청춘을 울부짖는 그런, 내가 싫어하는 부류인 것 같다.
“…아, 네. 제가 사용하는 항아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내 속마음과는 다르게 빌헬름에게 살갑게 대답한다.
내가 어떻게 느끼든 간에 나중에 악역이 되기는 해도, 우선 귀족이잖아.
‘인생은 인맥이지.’
우선 추후에 이득이 생길만한 인물이었기에 우호적 관계를 맺기로 내적으로 결정했다.
나중에 복수전은 따로 하더라도 말이지.
“…자네 전사가 아니었나?”
전사? 항아리 전사도 나름 전사이기는 한데.
“도적이었던 건가? 아니면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니 강해진 그런 유형의 상인인가?”
단검 날리는 실력은 웬만한 도적보다 나을 것 같기는 한데.
근데 항아리 만드는 거랑 도적이랑 무슨 상관이야? 항아리 안에 폭약이랑 철조각 같은 걸 채워서 던지면 도적 비슷하게 따라 할 수는 있긴 하겠네.
“카인은 마법사인데요.”
나디가 내 뒤에 숨어서 빌헬름을 흘겨봤다.
아무래도 자신을 노렸던 기억 때문인 것 같다. 얘가 아직 사회생활이 덜 됐네.
일단 뜯어먹을 게 있으면 부모 죽인 원수만 아니면 웃는 낯으로 대할 줄 알아야 한다.
‘더럽지만 여기는 그런 세상이니깐.’
“마법사? 이거 아무래도 우리의 첫 만남부터가 잘못됐었군. 허허. 그래도 자네는 주먹 하나 휘두를 줄 모르는 주문 사용자들과는 다르군. 전사의 피가 흘러. 그래도 아무리 애인이 소중해도 다음부터는 앞으로 나서지 말게. 하하하!”
나디는 지금까지 나를 마법사라고 알고 있던 건가?
마법 항아리를 사용하기는 해도, 나름 항아리 전사인데. 그리고 애인은 무슨 소리야?
나랑 이 핏덩이 여고생이랑 엮은 거야? 이 새끼, 철컹철컹 당해봐야 정신을 차릴 녀석이네.
“그게 아니라…….”
쿠구궁.
지진이다. 갑자기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늘이…….”
뒤에서 들려온 나디의 말에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이 닫히고 있다.
정확히는 하늘에 천장이 생기고 있다. 수 킬로미터의 돌기둥이 생겨나고 천장이 생겨난다.
분명 풀이 무성했던 땅이 진흙투성이 땅으로 변한다.
어느새 멈춘 진동과 함께 세상이 바뀌었다.
* * *
이상 현상일 일어나자 함께 빌헬름은 어느 천막으로 달려갔다.
아마 저기가 왕자의 천막이겠지.
필드가 바뀌었다.
‘어떤 놈이 히든 보스를 깨운 거지?’
브레이그의 히든 보스를 깨우려면, 첫 번째 우는 섬에서 숨겨진 조각상을 부서야 한다.
이건 내가 섬에서 탈출하려고 부쉈던 그 조각상이다.
‘제단은? 거길 뚫었다고?’
제단은 상위종 켄타우로스 10마리가 항상 지키고 있다.
여기 돌아다니는 탐험가들의 수준을 보면 쉽사리 성공할 것 같지 않은데. 그리고 상위종 10마리를 다 죽인다고 발동하는 것도 아니다. 놈들의 피가 있어야 한다.
정확히는 중간 보스 격인 투나티스의 피가 필요하다. 그 불도저 같은 놈을 어떻게 잡았지? 그놈은 지금 내 수준으로도 무리인데.
‘인간방패로나 붙잡히는 탐험가로는 어림도 없다. 그러면 남은 건 기사랑 징벌부대 죄수들. 아두인의 기사들이 켄타우로스를 처리한다고 해도, 사실상 인간으로만 이루어진 파티로는 제단을 못 여는데. 게다가 걔네는 전부 여기 모여 있잖아. 뭐지? 몬스터끼리 내전이라도 일어났나?’
나도 이 조건을 맞추는 게 까다로워서 브레이그의 히든 보스를 잡은 적은 많지 않다.
인간이 몬스터를 죽이면 시체는 사라지니깐. 아니면, 완전히 죽지 않은 상황에서 피만 뿌렸나?
실제로 현실에서는 본체가 완전히 사망하지 않으면 시체나 피는 사라지지 않았다.
게임에서는 써먹지 못할, 현실 꼼수였다. 아니면, 켄타우로스의 피라도 드랍된 건가? 게임에서도 수집가의 성을 털어야 구할 수 있던 아이템인데.
‘하지만…. 아냐, 괜히 지금 알아낼 수단도 없는 사실에 집착하지 말자.’
우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떠올린다. 돌파구가 떠오르기를 기대하면서.
우선, 히든보스가 등장하면 필드가 바뀐다. 브레이그는 지저세계로 전이된 듯한 착각을 주는 ‘토굴’이 된다.
이미 만들어뒀던 항아리를 슬링백으로 집어넣으며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고민한다.
“카인, 지금 뭐 하는 거야?”
“아, 그래. 나디, 네가 있었지. 화염구 주문을 언제든 쓸 수 있게 준비하고 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우는 섬에 다시 떨어졌다고 생각해. 거기만큼 지독하지는 않지만, 대비 정도는 해둬야 해.”
“…알겠어.”
심각한 표정으로 이어지는 대응책 설명에 나디가 고개를 주억이며 주문을 준비한다.
앞으로 대략 15시간 정도가 지나면 던전 밖으로 나가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니깐.
나디는 주문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는지 망토 속 아공간에서 물건 하나를 꺼냈다.
나디가 꺼내놓은 건 세검과 버클러가 걸려 있는 벨트였다.
언뜻 품에 스크롤 한두 장을 집어넣기도 했다. 나는 바닥에 널브려놓았던 짐들을 정리했다.
항아리 대신에 투척용 무기와 불을 피울 수 있는 아이템들을 크로스백으로 자리를 옮겼다.
‘항아리를 다 넣었더니 주머니 공간이 모자라네.’
내가 이러는 이유는 여기 출현하는 히든 보스가 사용하는 스킬 때문이다.
‘1번만 사용한다고 해도, 히든 보스가 사용하는 스킬 중에 ‘침묵’계통이 있으니깐.’
한번 뿐이기는 해도 놈이 사용하는 스킬에는 우는섬의 필드 효과와 같은 디버프 스킬이 있다.
그래도 그 비에 맞지 않으면 디버프가 발동하지 않는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다.
“새로운 타입의 몬스터가 출현했습니다!”
그리고 필드가 바뀌면서 출현하는 몬스터가 추가된다.
“뱀? 뱀입니다!”
나타나는 몬스터로 뱀이 추가된다. 종류도 다양하고 속성도 다르지만 뱀의 형태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쿵. 쿵. 쿵.
발밑으로 거대 몬스터의 육중한 발걸음이 느껴진다.
군대의 진영을 둘러싼 바리게이트 너머로 안개에 휩싸인 채 움직이는 거체가 보인다.
뱀이면 땅을 기어다니니 발소리가 들리지 않아야 하지만,
‘놈은 기어다니는 게 아니니깐.’
그래도 여기가 목표가 아닌지, 다른 곳으로 향한다.
“도, 도와주세요!”
“안, 안에 들여보내 주세요.”
탐험가들이다. 필드가 바뀌면서 심상치 않아진 상황을 눈치챈 탐험가들이 왕자의 군영에 찾아왔다.
몇몇 사람들의 얼굴은 낯이 익다. 아까 전 여기 있다가 나간 사람들도 섞여 있었다.
앞서 탐험가들을 관리했던 부사관이 입구로 다가갔다.
“불가(不可)! 꺼져라!”
하사관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병사들에게 명령한다.
“함부로 군영으로 침입하려는 자는 사살해도 좋다.”
척. 척. 척.
십수 명의 병사들이 억지로 들어오려는 탐험가들을 밀어내버리고, 창을 겨눈다.
“왕가(王家), 왕족이라면 의무를 다하시오?!”
“마, 맞아. 왕족이라면 보호의 의무를 다해라!”
탐험가들이 왕족의 의무를 다하라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눈앞에 겨눠진 창날에 섣불리 덤벼들지는 못하고 소리만 지르고 있었다. 왕족이 의무가 어딨어?
지금 상황에 이런 걸 물어볼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지.
“나디, 왕족의 의무가 뭐야?”
“응?”
나디가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그것도 몰라?’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미샤르 가문에서 책을 읽기는 했지만, ‘귀족의 법도’, ‘귀족이 지켜야 할 101가지 규칙’ 같은 제목의 교양서적은 읽지 않았다.
‘그래도 한 권 정도 읽어보려고 했지만, 반쯤 읽다가 포기했지.’
“왕가의 의무는 ‘보호’야.”
“보호? 뭘 보호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