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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 백 개 찍고 회귀한 배우님 3권
전서서 현대 판타지 장편소설
목차
Chapter1
Chapter2
Chapter3
Chapter4
Chapter5
1
Chapter1
며칠 뒤.
‘대학로 편’의 첫 회 방송 당일.
우리는 조민지 선배의 집에 모여 1화를 다 함께 모니터링 하기로 했다.
멤버는 나와 주민희, 민중이까지. ‘한지붕 남남’의 배우들끼리.
“언니. 근데 남편분은요?”
“응? 쫓아냈지! 너희 오는데!”
“……?”
“아하하! 농담! 그냥 친구랑 놀라고 바깥에 보냈어!”
“아아!”
납득됐다는 듯 감탄사를 내뱉는 주민희.
근데 그게 쫓아낸 거 아닌가?
“근데 진하야. 근데 오이디푸스 여주 역은 어떻게 됐어?”
“맞다. 그거 엄청 유명한 배우들 왔었다며?”
“아, 그랬죠.”
나조차도 깜짝 놀랄 정도의 배우들이 왔었다.
오혜진 이모에, 대상을 수상한 권하서까지.
나중에 알고 보니 연극배우 3명도 꽤나 인정받는 사람들이었다.
“근데, 누나나 주민희 네가 왔으면 무조건 확정이었을 텐데.”
“그렇긴 한데, 나는 스케줄 내기가 힘들더라고. 그리고 그건 좀 많이 어려운 작품이잖아? 자신도 없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이유였다.
공개 코미디를 오래하셨으니 로코라면 몰라도, 정극 연기는 어렵지.
하지만 조민지 선배 말고, 쟤는?
“왜. 뭐! 나도 바쁘다고오!”
눈을 뾰족하게 뜨며 뭐 어쩌라는 듯 당당하게 말하는 주민희.
“나보다 바빠?”
“그건 아니긴 한데…… 2개 하기엔 좀 후달리잖아.”
“뭘 후달. 하, 야. 연예인 하겠다는 애가 말을 골라도 꼭 무슨…….”
“아아 또 잔소리! 쨌든, 못 한다고! 로코랑 비극을 어떻게 동시에 연습하냐고오! 내가 너냐고!”
결국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항변하는 주민희.
우리 회사 대표님(허 모씨, 탈모 진행 중)가 봤다면 급성 쇼크로 병원에 실려 갔을 위험한 행위였다.
“누나. 이것 좀 봐요. 진하 형이 이렇게 꼰대예요.”
“그러게. 우리 희극인실 아저씨들 보는 것 같네.”
꼬, 꼰대?
이 사람들이 참,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을 해 주는 건데!
“그래서 누가 됐어? 우리 너무 딴 얘기로 빠졌던 거 같네.”
“아, 그게요…….”
권하서라는 대세 배우와, 오혜진이라는 권하서가 태어났을 때쯤에 데뷔한 중견 배우.
사실, 연기의 실력과 이미지로만 보면 권하서가 우위였다.
오혜진 선배가 아무리 30년차 탈-란트라고 하지만, 권하서는 이번에 대상 수상자인 만큼 연기력 자체도 우위인데다, 비주얼부터가 퇴폐미가 넘치는 얼굴이라 이번 작품에 어울리기도 한다.
하지만, 원래 배우라는 게 연기력과 비주얼 만으로 섭외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상대 배역과의 캐미, 혹여나 주인공을 잡아먹지는 않을지.
그런 것도 전부 생각해야 하는 게 캐스팅이다.
그래서, 상당히 오래 회의한 결과…….
***
“그래서, 어떻게 됐다고?”
“떨어졌어어!”
허채원의 물음에 오혜진은 절규하며 이마를 부여잡았다.
신과 구의 캐스팅 경합 결과, 탈락한 것은 오혜진이었다.
“주인공이랑 호흡도 내가 더 잘 맞고, 흥행 요소도 안 밀리고, 무대 경험 다 앞서는데에!”
그것들을 전부 무시해도 좋을 만큼…… 권하서라는 서른도 안 된 배우와 실력 차이가 났다!
심지어 나도 잘했는데!
처음에 대기실에서 마주쳤을 때, 반쯤 눈이 풀린 채로 인사할 때부터 싸늘하기는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권하서 걔는 그때부터 감정을 잡고 있었던 거다!
“아니. 걔는 어떻게 나온 거래?”
근데 말이 되나?
소속사 대표도 쩔쩔매는 자신도 이 연극에 출연하는 데 설득과 땡깡을 부린 끝에 허락을 받았는데.
“권하서 걔. 아역 출신도 아니고, 아이돌 주력 회사 배우잖아. 이게 말이 되나?”
이제 대상 받았으니까 돈 쭉쭉 벌어야 할 때인데 이런 연극에 나온다고?
“어휴, 어쩔 수 없지 뭐. 상대가 나빴네. 우리 진하 다른 영화 준비하는 거 있다고 들었거든? 그거 소개시켜 줄게.”
허채원의 위로를 들었지만, 딱히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는 오혜진이었다.
“그것보다 시작한다. 일단 저거나 보자.”
“……그래.”
두 사람은 다시 TV로 눈길을 돌렸다.
때마침, ‘우동구’의 1화가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
-자, 지난 인사동길 잘 끝마쳤고, 이번에는!
‘우동구’의 에피소드 1화는 보통 게스트 소개와 에피소드 지역 소개, 문제점 확인 등으로 이루어진다.
이번 ‘대학로 편’의 1화도 마찬가지였다.
-미리 이곳의 생리를 파악하기 위해 몇 년 전부터 잠입 작전 수행 중이었던 요원, 서진하입니다!
1화 시작 5분쯤 후에 등장한 서진하.
다들 평범한 복장을 입고 있는데, 혼자만 진짜 요원처럼 검은 양복을 입고 등장했다.
-진하 씨는 근데 대학로가 아니라 국정원에서 온 거야?
-그러니까. 안 더워? 요원에 너무 심취한 거 아니야?
-……여기는 대본대로 안 하나요? 대본 받은 거랑 너무 다른데요?
등장하자마자 따뜻한(?) 환대를 받는 서진하.
그는 결국 대학로에 어울리는 캐주얼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쭈글쭈글하는 거 캡처각임
이어진 내용도 평이했다.
-여기가 제가 극단 시절에 자주 왔던 덮밥집인데, 맛 괜찮죠?
-와, 여기 진짜 맛있는데요?
-아니 진하 씨. 레몬차트 히트곡은 몰라도 브로드웨이 맛집은 안다는 게 맞네!
서진하가 자기가 아는 대학로 맛집을 소개하거나.
-잠깐만. 뭐? 정치풍자 연극이나 19금 연극을 한다고?
-아니 진하 씨 요원이 아니라 우리 프로 망치려는 자객이었어?
-오빠 잠깐만요, 저 잠깐 가 볼 데가 있어서…….
-야 인마! 거긴 성인 극장이야! 카메라 들고 가면 우리 큰일 나!
사람들이 잘 모르는 뒷골목 극장을 소개하는 등의 내용들.
그리고 1화의 마지막쯤.
현재 대학로의 문제를 파악한 출연진은, 다시 스튜디오에 모여 말을 주고받았다.
산적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건지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한바퀴 돌아보니까 느낀 건데, 생각보다 극장이 많이 없다?
-그러니까요. 코로나 때 문 닫은 곳들이 공실로 남은 데도 많고요.
-그래서, 저희는 이번에 여기서 연극을 해 볼까 합니다!
-연극?
-아니, 우리가?
-민지 누나는 공개 코미디 경력이 10년 넘잖아요. 저보다 잘할 걸요?
여기서, 제작진은 ‘대학로 연극제’의 일정표를 꺼내 보이며 출연진에게 통보했다.
그리고.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고, 주인공은 서진하 씨입니다.
-저요?
-네. 3, 40분짜리 연극이라,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걸 위해서…… 저희가 현지 협조자를 2명을 섭외했습니다!
그 말과 함께, 1화가 끝났다.
그리고 이어진 예고편에는.
「-다음 주!
드디어 시작된 연극 연습!
-아니, 이거 미친 거 아니에욧?
-그, 서 배우님. 연기 좀 가르쳐 주셔야겠는데?」
약간의 작위적인 갈등과 함께, 서진하의 활약을 예고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
1화가 방영되고 난 뒤, ‘오이디푸스’와 ‘한지붕 남남’의 연습 장소는 대학로에서 다른 곳으로 바뀌었다.
‘우동구’의 1화가 방영되면서 대학로에 사람이 더 몰렸고, 서진하에 ‘권하서’라는 톱급 배우가 추가됐기에 보안을 위해 바뀐 것.
-끼이익.
그리고 이곳에 새로운 손님이 들어왔다.
40대 후반의 나이지만, 빛을 못 보고 살았기에 비교적 새하얀 얼굴과 질끈 묶은 머리카락.
위즐 스튜디오의 간판급 전속 작가, 유소라 작가였다.
“어우, 이런 데는 또 오랜만이네.”
서진하가 비극 연기를 한다는 소문을 듣고, 후배였던 양혜원과 김창겸을 끝없이 닦달한 끝에 얻은 초대장이었다.
아쉽게도 ‘눈으로 보기만 한다’라는 조건이 붙기는 했지만, 그래도 얼굴도장이라도 찍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겸사겸사 다른 좋은 배우들 없나도 보고!’
그녀는 다음 차기작의 서브 남주로 서진하를 생각하고 있었다.
주인공에게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가르쳐 주지만, 끝에선 매몰차게 버려질 배역.
그 끝에서 눈물을 흘릴 걸 생각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