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환
5권
겨울버들잎 장편소설
121화. 낙 대도독의 방문(2)
그렇게 유린기를 맛보자마자, 낙 대도독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속으로 감탄을 터트렸다.
‘너무 맛있는데! 어떻게 닭에서 이런 맛이 날 수가 있지?’
지금까지는 다른 사람들의 말이 약간 과장되었을 수도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막상 음식을 먹어 보니 자기 생각이 틀렸음을 곧바로 인정할 수 있었다.
이어 그는 서둘러 두 번째로 소고기 편육을, 그다음으로는 오리 혀 조림을 차례대로 맛보았다.
고소한 맛부터 쫄깃쫄깃하고 새콤달콤한 맛까지, 다채로운 맛을 경험하게 된 낙 대도독은 큰 충격을 받았다. 오랜 시간 이런 음식을 맛보지 못했던 그의 젓가락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다 먹고 얼른 더 시켜야지!’
그렇게 한참을 먹고 난 낙 대도독은 비로소 한숨을 돌리며 옆에서 시중을 들던 홍두에게 물었다.
“…한데 왜 저쪽 탁자에 있는 작은 접시들은 안 보이는 것이냐?”
배가 좀 차고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기자 그제야 들어올 때 봤던 위한의 탁자 쪽 접시들이 생각이 난 것이었다.
‘음식들이 다 맛있으니 안 먹어 본 것 없이 전부 먹어봐야지!’
하지만 낙 대도독의 물음에 홍두는 난감한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것들은 무료로 제공하는 반찬이라 모든 손님에게 제공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 낙 대도둑이 곧장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개양 왕은 주면서, 친아비인 내게는 줄 수 없다고?’
이어 낙 대도독은 위한 쪽을 한 번 쳐다본 뒤 딸 낙생을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 이 상황에 딸의 해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계속되는 그의 눈빛에 결국 낙생이 홍두를 시켜 반찬을 내오게 했다.
“홍두야, 얼른 아버지께도 반찬을 가져다드리거라.”
이어 열심히 먹고 있는 금린위 병사들을 향해서도 쪽도 가리키며 턱짓해 보였다.
“그리고 저쪽 탁자에다도 가져다주렴.”
이에 금린위 병사들이 입 주변이 온통 기름투성이가 된 채 고개를 들고서 기대에 부풀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대체 뭘 더 가져다주려는 걸까? 헤헤, 뭐든 상관없어. 다 맛있는걸!’
그러나 낙 대도독이 눈살을 찌푸리며 이를 제지했다.
“저들에겐 가져다줄 필요 없고, 내 탁자로만 가져오너라.”
사실 그는 지금도 조금 후회하고 있었다. 딸이 만든 음식이 이렇게 맛있을 줄 알았다면 이리 잘 먹는 금린위는 데리고 오지 않았을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홍두가 기본 찬들을 내왔고, 그중 수정 새우 냉채를 맛본 낙 대도독은 곧바로 낙생에게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생아, 이렇게나 맛있는데 팔지 않는 것은 너무 아깝구나.”
그러자 낙생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버지, 그 반찬들은 아무나 드리지 않는 것이니 걱정 마세요.”
“그럼 됐다.”
이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낙 대도독은 또다시 인상을 굳혔다. 아무에게나 주지 않는다면서 개양 왕이 그 반찬을 먹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이어 그는 아비 된 자로서 딸의 관계를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지켜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 그에게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에 가만히 있었다. 이에 방법을 궁리하던 낙 대도독은 이내 한 가지 좋은 수를 떠올렸다.
“왕야, 마침 내일은 휴일인데 혹시 시간 괜찮으신가요? 누추하지만 저의 집에 오셔서 함께 차 한잔하시는 것은 어떠신지요?”
음식을 맛있게 먹고 난 위한은 손수건으로 입가를 훔치며 그의 초대에 응했다. 그렇지 않아도 어차피 그는 내일은 백조를 보러 갈 계획이었다.
“그러지요. 낙 대도독께서는 마저 천천히 드시지요. 저는 다 먹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어 위한은 낙 대도독과 인사를 마친 뒤 낙생에게도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곧장 그 길로 주점을 떠났다.
한편 위한의 뒷모습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보던 낙 대도독은, 문득 무언가를 깨닫고 눈살을 찌푸린 채 고개를 돌려 딸을 바라보았다.
‘가만, 지금 개양 왕이 아무나 안 준다는 반찬도 얻어먹고, 심지어는 계산조차도 안 하고 그냥 나간 거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낙 대도독에게 결국 낙생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
“큼큼, 별거 아니다.”
헛기침하며 딸에게서 시선을 거둔 낙 대도독은 홍두에게 지시했다.
“오리 혀 조림 두 접시만 더 갖고 오너라.”
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주점에 보는 눈이 많아 더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이에 잠자코 입맛에 맞았던 흑마늘 오리 혀 조림이나 더 먹기로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가만히 서 있기만 한 홍두를 보고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채근했다.
“어서 가서 음식을 내오지 않고 가만히 서서 뭣 하는 것이냐?”
‘정말, 이 시녀는 못 쓰겠군, 점원으로서의 자질을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어! 하긴 내 기억에도 저 계집애가 잘했던 일은 고작 생이를 따라다니면서 남첩이나 납치해 오는 거였는데, 어찌 이런 일을 해내겠어?’
낙 대도독의 재촉에도 홍두는 미동 없이 서 있더니 이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남은 게 없어요.”
‘없다고?’
그러자 낙 대도독이 못내 아쉬운 얼굴로 다시금 주문을 넣었다.
“그럼 유린기 한 접시랑 소고기 편육 두 접시 갖고 오너라.”
“…그것도 없어요.”
홍두가 이를 악문 채 낙 대도독의 앞에서 살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주점 식구들이 먹을 것까지 전부 축낸 저 식충이 병사들의 의자를 걷어차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낙 대도독의 앞이라 간신히 화를 참고 있는 중이었다.
한편 낙 대도독은 여전히 상황파악을 못 하고 멍해진 얼굴로 되물었다.
“어째 주문하는 것마다 전부 다 떨어졌다는 것이냐?”
이에 홍두가 접시를 싹싹 핥아먹고 있는 금린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또박또박 외쳤다.
“그야 저 사람들이 다 먹어치웠으니까요!”
물론 낙 대도독도 많이 먹기는 했지만, 낙생의 아버지인 그에게까지 원망의 말을 쏟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홍두의 말을 들은 낙 대도독이 부하들을 향해 호통쳤다.
“네 이놈들!”
그러자 밥을 먹고 있던 금린위들이 힘겹게 젓가락을 내려놓고서 일제히 예를 표했다.
“대인, 분부를 내리십시오.”
화가 난 낙 대도독이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키며 외쳤다.
“썩 꺼지거라!”
‘저놈들은 적당히라는 말을 모르는 거야 뭐야?’
낙 대도독의 외침에 놀란 금린위는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주점에 왔을 때 그들에게 음식을 내어주라 한 것은 분명 낙 대도독이었다. 이에 그가 진짜 화가 난 것인지 어쩌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도 곧 탁자 위에 높이 쌓인 빈 접시들을 보고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염치없이 너무 많이 먹었다는 생각에 부끄러워졌다.
이를 보다가는 복장이 터질 것 같았던 홍두는 음식을 전부 축낸 그들을 낙 대도독이 그냥 놔두지 않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먹은 음식들을 신경질적으로 계산하기 시작했다.
“소고기 편육 서른 접시, 유린기 스무 마리, 소 천엽 마흔 접시… 다 합해서 총 삼천팔백 냥입니다.”
호기롭던 낙 대도독도 가격을 전해 듣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가격이 비싼 건 알고 있었지만, 음식이 이 정도로 맛있을 줄은 몰랐지! 게다가 저 염치없는 놈들이 저렇게 많이 먹을지도 몰랐는데!’
가격을 들은 금린위들 역시 깜짝 놀랐다.
‘삼천팔백 냥? 그걸 우리가 다 먹은 거라고?’
이어 그들은 멍하니 식탁 위에 어지럽게 놓인 술잔과 접시들을 한 번 흘끔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는 아무 말 없이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한편 부하들이 명령에 따라 신속하게 주점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도 낙 대도독은 평소처럼 마냥 그들을 칭찬해줄 수 없었다.
물론 그에게 사천 냥 가까이 되는 액수쯤이야 그리 큰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그 돈이 자신뿐만이 아니라 저 멍청한 금린위들도 함께 먹어 치운 돈이라 생각하니 순간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차라리 그 돈으로 딸에게 연분이라도 사주었다면 훨씬 나았을 것이라는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화가 나는 건, 그들 때문에 자신이 충분히 먹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알겠다, 계산서 이리 가져오너라.”
이에 낙생은 홍두를 슬쩍 쳐다보고서 낙 대도독에게 말했다.
“아버지, 저희 점원이 뭘 몰라서 한 말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딸이 하는 주점에 오신 건데 제가 어찌 돈을 어찌 받겠어요.”
돈을 받지 않겠다는 그녀의 말에, 제일 먼저 계산대 쪽에 서 있던 점장이 놀라 고개를 쳐들었고, 홍두 역시 아연실색하며 낙 대도독을 쳐다봤다.
그중에서도 홍두는 그가 딸인 낙생이 자신에게는 돈을 받지 않을 것을 알고 저 식충이들까지 데리고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 가득한 얼굴을 하고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경멸 어린 눈빛을 눈치채고 순간 부끄러워진 낙 대도독은 곧 엄숙한 말투로 말했다.
“주점 안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손님이니 돈을 받아야지.”
그러자 낙생이 다시 웃으면서 말했다.
“주점이라고는 하지만 제가 어찌 아버지께 돈을 받겠어요. 그랬다가는 딸이 돈밖에 모른다는 소문이 날 수도 있다는데요, 안 그런가요?”
낙 대도독이 할 말을 잃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자 낙생이 이어서 말했다.
“사실 저희 주점은 탁자마다 주문할 수 있는 음식의 양도 정해져 있고, 모두에게 아까 같은 반찬을 주는 것도 아니랍니다. 애초에 아버지께서 주점에 오셨을 때부터 저는 주인이 아닌 딸로서 아버지를 대한 것이에요.”
딸의 속 깊은 말에, 낙 대도독은 그간 딸이 시련을 겪고 많이 성장했다는 것이 느껴져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사랑스러운 딸이 벌로서 도성을 떠나게 되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는 암살까지 당할 뻔하며 그의 맘고생도 심했었다. 그런데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끝내 딸이 철이 들었다는 생각이 들자 한편으로는 기쁜 마음도 들었다.

‘그래, 돌이켜 생각해보면 개양 왕의 노여움을 산 일이 그렇게 나쁜 일만도 아니었다. 잠깐!’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낙 대도독은 다시 고민에 잠겼다.
아무에게나 주는 반찬이 아니라면서 위한 그는 대체 왜 당연한 듯 기본 반찬을 먹고 있었던 것인지, 또 다 먹고선 돈은 왜 내지 않고 그냥 가버린 것인지 아직 의문이 해결되기 전이었다. 이에 그는 내일 위한이 집으로 오면 꼭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낙 대도독이 잠시 말이 없자 낙생이 그에게 차를 따라줬다.
“그러니 아버지께선 돈을 낸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그건 이번뿐만이 아니라 다음에 또 오셔도 마찬가지예요.”
올 때마다 돈을 안 받겠다는 그녀의 말에 낙 대도독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그럴 면목이 없었던 그는 차라리 사람을 보내 음식을 관아로 가져오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편 그렇게 딸을 위하는 생각으로 가득한 낙 대도독의 따뜻한 마음과는 달리, 낙생의 마음속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기만 했다.
물론 그녀도 낙 대도독이 군사를 끌고 와 진남왕부를 말살한 것은 그저 황제의 명에 따른 것뿐이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명령에 곧이곧대로 따른 그의 얼굴만 봐도 울분이 치미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결국 자신의 가문에게 칼을 겨누었던 자였다.
그래서 그가 맛있게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도 피가 한없이 차가워지기만 했다. 그녀가 만든 좋은 술과 안주는 낙 대도독이 맛있게 먹고 기뻐하라고 만든 것은 아니었다.
낙 낭자의 몸을 빌려, 또 낙 대도독의 딸로서 편의를 누리며 그에게만큼은 원수를 갚지 않는 것이 그녀가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딱 거기까지만이었다.
“아비로서 너에게 참 고맙구나.”
한편 딸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면서 낙 대도독은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로서는 차라리 돈을 지급하고 마음 편히 양껏 먹는 것이 나았기 때문이었다.
‘다음번에는 생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놈을 시켜서 음식을 사 오라고 해야겠어.’
122화. 팔찌 한 쌍(1)
이윽고 식사를 마친 낙 대도독은 아쉬운 듯 입가를 닦으며 일어섰다.
“생아, 이제 같이 집으로 가자꾸나.”
낙생도 마침 그 태자의 애첩에 관해 물어볼 것이 있었던 터라 그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오라버니, 남아서 정리 좀 해주세요. 주점을 닫고 홍두와 함께 오시면 됩니다.”
“그래.”
이에 성삼랑이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그와 달리 홍두는 두 눈에 초점까지 잃은 채 어쩐지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
이내 성삼랑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심상치 않아졌다.
‘모두 똑같이 주점에서 일하는데 저 인간만 배부르게 먹었다니!’
성삼랑은 그런 홍두가 분명 자신을 괴롭힐 것 같다는 위험을 감지하고 낙생에게 급히 구조 요청을 보냈다.
“생아….”
낙생도 대충 사태를 파악하고서 홍두를 향해 말했다.
“주점을 닫고 나면 수고에게 너희가 먹을 양념 비빔면을 만들어주라고 할게.”
한편, 채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던 낙 대도독은 이를 듣고 순간 멍해졌다.
‘양념 비빔면?’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그로서는 이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방금처럼 서둘러 집에 가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가 아쉬움에 문을 나서며 한숨을 내쉬자 낙생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아버지, 오늘 식사가 별로셨나요?”
“아니… 모든 게 너무나도 완벽했단다….”
실제로도 딸이 돈만 받아 준다면 매일 와서 먹을 의향이 있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그렇게 주점을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주점으로 돌아오던 비표와 소흑을 길 위에서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