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은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등 뒤로 나지막한 음성을 내던졌다.'“그만 쳐다봐라. 네가 하도 나를 열심히 봐서 닳아버릴 지경이다.”'“말을 해도 꼭 그런 식으로 하나요, 당신? 정말…… 성격 한 번 안 좋은 사람이네요.”'“내 성격이 그렇고 그렇다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었나, 린.”'입구를 가린 휘장을 젖히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이린이었다. 그녀는 여느 때처럼 가벼운 비단옷이 아닌 엷은 갑주를 걸치고 있었다. 남야성의 황량한 대지 위에서 마주쳤을 때처럼 무장한 그녀는 무척이나 작아보였다. 그러나 강현은 그녀가 눈에 보이는 것만큼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완전히 중무장을 했군. 네가 가진 암기들만 써먹어도 일개 대대는 몰살시킬 수 있을 거다.”'“어떻게 알았죠?”'“그렇게 딱 보이도록 감춰놨는데 알아보지 못하는 게 멍청한 것 아닌가.”'강현은 태연한 얼굴로 이린의 머리를 고정시킨 비녀와 뾰족한 장신구들을 건드렸다. 얼핏 보기에는 귀한 신분의 여인이 제 몸을 장식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질 법한 물건들이었지만, 사실 그것들의 정체는 마취제를 발라둔 암기였다. '그는 연이어 이린의 옷소매를, 허리에 감춘 단검을 짚어냈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엷은 갑주를 끌어내린 뒤 봉긋한 가슴에 손을 얹었다.'“……거기에는 감춘 것이 없어요, 강현.”'“없긴 왜 없나. 이렇게나 잘도 감추고 있었건만.”'탄탄한 사내의 손이 어루만진 것은 말캉한 여인의 가슴이 아닌, 왼쪽 가슴 밑의 심장이었다. 강현은 허리를 굽혀서 그녀의 가슴에 귀를 가져갔고,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흘려들었다. 그가 손을 댄 직후부터 이린의 심장은 유난히 거세게 날뛰고 있었다. 쿵, 쿵, 그리고 또다시 쿵. 강현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지그시 눈을 감았다. '“네 심장이야말로 내게는 가장 치명적인 무기다. 넌…… 유일하게 나를 무너뜨린 존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