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리면서 수술복을 든 간호사가 들어왔다. 정막이 흐르던 병실에 홀로 앉아 먼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던 여자가 천천히 머리를 돌렸다.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순수한 아름다움은 창백한 얼굴과 초점을 잃은 눈빛에도 가려지지 않았다. '“윤세린 환자님, 30분 뒤에 수술을 시작 할 겁니다. 옷 갈아입고 준비해주세요.”'그녀는 대답대신 머리만 끄덕였다. 꽉 깨문 입술로 간신히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수술복을 갈아입었다. 단추를 하나하나 여미는 그녀의 손은 파르르 떨고 있었다. 잠시 뒤 간호사를 따라 들어간 수술실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낯설고 차가운 기운이 도는 수술실을 둘러보았다. 수술을 위하여 분주히 돌아치는 간호사들은 꼭 마치 그녀의 운명을 좌우지 하는 저승사자 같았다. 오늘만큼은 그들이 참 무섭게 느껴졌다.'“저기……, 간호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시기 전까지 잠깐 5분만 자리를 비켜주시겠어요?”'간호사가 갸우뚱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제발 부탁이에요. 도와주세요.”'세린은 간절한 표정으로 간호사를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그녀의 눈물을 미리 봤는지 간호사는 말없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세린은 자신의 몸을 이끌어 수술대에 누웠다. 그리고 핸드폰 카메라로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을 찍었다.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녀는 드디어 어디엔가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다. '[홍복희 여사님, 이 사진이 바로 영원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당신이, 바로 당신 손으로 오늘 당신 손자를 죽인 겁니다. 오늘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이 나와 이 아이한테 함부로 했던 모든 것들에 당신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 윤세린]'발송 버튼을 누르고 세린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부지런히 두 번째 메시지를 발송했다.'[전민호, 여기는 우리 아이를 지워버리는 곳이야. 몇 분 뒤면 너의 아이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돼. 이 아이와 함께 당신만을 사랑했던 윤세린도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거야. 두고 봐, 행복이라는 게 너한테 얼마나 큰 사치인지 보여줄 거야!]'몇 초가 지나자 핸드폰이 불이 나게 진동을 울려댔다. 윤세린은 아예 휴대폰 배터리를 뽑아버렸다. 간호사와 의사가 모두 들어왔다. 그녀는 말없이 수술대에 누웠다.'“자, 먼저 마취제를 놓을 겁니다. 하나, 둘, 셋 하시고 푹 쉬고 일어나면 모든 게 다 끝나 있을 것입니다.”'세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사가 마취제를 놓기 시작했다. 세린의 눈가에 촉촉하게 맺혀있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아가야, 미안해. 엄마를 용서하지 마!”'''남편 앞으로 도착한 택배 하나, 그 속에 들어 있는 아기 초음파 사진……. 낮에 받은 그 불길한 택배는 고요하던 내 일상을 마음대로 들쑤셔놓은 느낌이다. 천만가지 가능성을 추측하면서 나는 불안하고 초조했다. 하루 종일 꺼져있는 남편 휴대폰은 내 기분을 더욱 어수선하게 만들어놓았다. 나는 종일 남편을 기다렸지만 남편은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에야 들어왔다. '비밀번호 입력하는 소리부터 탁 하고 문 닫히는 소리까지 나는 죄다 똑똑히 듣고 있었다. 뒤집어쓴 이불 속에서 가빠지는 내 숨소리가 더욱 또렷해졌다. 기분 같아서는 그냥 다짜고짜 남편의 뺨을 후려치고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기 전에 나 스스로가 이 상황을 이해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고 어쩌면 남편한테 확인해야 할 부분이 필요했다. 설사 모든 것이 내가 걱정하는 그런 결과라고 해도 나는 참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주변에서 결혼도 어렵지만 이혼은 더 어렵다고 들어왔다. 자칫 경솔한 내 행동 하나가 우리 부부를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일까?'어찌 보면 나는 겁쟁이일 수도 있었다. 피어오르는 분노를 꾹꾹 참느라 얼굴의 근육까지 가볍게 떨고 있었다. 그렇다, 남편한테 변명이라도 할 기회는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순리이고 운명이라 생각해야 하나?'머리는 다시 빠개지게 아파왔다.